지상에선 미완결된 사랑

결국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건 동생이다

by 허윤숙

동생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못 받은 편이었다. 예부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더 아픈 손가락과 덜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이다. 예쁜 짓을 하면 예뻐해 줄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애교나 사랑스러움은 필수인데 선천적으로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동생이 그랬다. 마치 빨리 세상을 살아내려고 서두르는 조로증 환자 같았다. 아기인데 아기 같지 않은 아기. 동생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사랑이 없다고 느꼈다. 평소에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아빤 날 사랑하지 않아. 너 쳐다볼 때랑 나 쳐다볼 때 눈빛이 달라.


동생이 아플 때 그 말이 떠 올랐다. 그래서 아빠한테 말했다.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라고.

그러자 아빠가 해 주었나 보다.


하루는 동생이 나에게 그런다.

"네가 시켰지?"

"내가 뭘?"

"아빠한테. 아빠가 갑자기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잖아. 뜬금없이 말이야."


아빠도 참. 분위기 봐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야지 내지르듯이 하면 눈치챌 수밖에.


시침을 떼고 말했다.

"아니? 그런 말을 내가 왜 해? 아빠가 이제야 본심을 드러내나 보다. 사실일 거야. 어렸을 때 네가 자주 아팠잖아. 그래서 난 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 네가 아파서 누워있으면 아빠가 그 비싼 바나나를 너만 사주었잖아. 내가 하나 달라고 해도 안된다고 하셨어. 너 먹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거 왜 그런 줄 아니? 네가 아빠를 제일 많이 닮았잖아. 그러니 아빠도 신기한 거지. 특히 네 걸음걸이가 딱 아빠잖아. 터덜터덜 걷는 거. 그러니 아빠가 널 제일 예뻐했던 것 같아. 겉으론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원래 남자들이 좋아하는 사람한테 잘 표현 못하잖아."


내 말을 건성으로 듣는 척하는 동생. 옆으로 슬쩍 보니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언니가 참 용쓴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고? 자기가 다 시키고 말까지 지어내네. 어쨌든 이렇게라도 신경 써 주니 고맙긴 해.'

동생의 진짜 속내가 궁금하다.


지금 생각하니 동생은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당시엔 그저 욕심이 많아서 인가보다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동생의 행동은 다른 형제들에게 사랑을 빼앗긴 아이들이 많이 하는 것이다.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부모의 환심을 사려는.


동생은 용돈을 제일 적게 쓰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똑같이 10원짜리 동전을 주셔도 동생은 주머니에 넣고 하루 종일 쓰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은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 먹어도 꾹 참고서. 그러면 칭찬을 해주어야 하는데 부모님은 우리에게 또 10원을 주시고 동생은 안 주셨다.

"너는 아직 용돈 있지?" 하고.

어릴 적 '홍당무'라는 동화를 보면서 동생이 떠오른 이유다.


동생은 학비도 안 들었다. 대학교는 모대학 경영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하는 바람에 3000원을 보태서 입학금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줄곧 과수석을 놓치지 않아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 노력에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애교라고는 없는 성격과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이다. 부모들은 붙임성 있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 땅에서의 사랑만 사랑일까? 결과적으로 가족들이 가장 많이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한 건 동생이다. 아빠는 동생이 떠난 후로 식사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를 벽에 치면서 밤새 우신다.


생전에 못해준 것들이 기억나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을 꼭 닮은 딸을 제일 사랑했는지도 모르다. 다만 단점마저도 자신이랑 똑같아서 껄끄러웠을 수도.


사람은 때로 상대방의 미완성된 모습을 보고 성급히 판단한다.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난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이 알 것이다. 당시엔 동생을 향한 사랑들이 단지 완결되지 못한 것뿐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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