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싼 걸로 끊었다
동생 덕분에 나는 제일 약한 암에 걸렸다
동생이 죽고 나자 나도 암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미 우리 집안에는 뇌종양, 후두암 등 여러 암들이 발병한 상태였다. 암의 종류가 다 달라서 집안 내력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암이 잘 걸리는 체질임은 분명했다.
다행히 나는 일반적인 암 환자들의 생활 습관과 거리가 멀었다. 고기를 싫어하고 술은 한잔만 먹어도 빨개지며 담배는 피워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인스턴트 음식은 라면부터 싫어한다. 잠도 많고 성격도 예민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인 편이라고 할까?
동생을 암으로 잃고 나니 특별히 암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암을 예방하는 식품을 먹었고 조금만 피곤해도 휴식을 취했다. 동생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이 과로였다는 생각에.
그런데도 암에 걸렸다. 대신 제일 약한 걸로. 마치 교통 법규를 어긴 사람이 교통경찰에게 애교로 얻어낸 결과 같다.
"아잉. 제일 싼 걸로 끊어주세요. 네?"
갑상선암. 이미 몇 해 전부터 이 암은 효자암이라고 알려져 회자되었었다. 아님 공주 암이라나? 이 병에 걸리면 무조건 잘 쉬어야 하고 보험사로부터 다른 암과 똑같이 돈은 나오지만 죽을병은 아니라는.
하지만 병원에서 말했다. 내 암은 죽을 수도 있는 상태라고. 일반적으로 갑상선에 생긴 종양은 크기가 아무리 커도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게 보통이란다. 그래서 어떤 암은 그대로 두면서 체크하는 게 낫다고.
하지만 내 암은 그렇지 않았다. 크기는 5밀리미터밖에 안 되었지만 기도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숨 쉬는 걸 방해하고 있었다. 엑스레이 상으로도 기도를 압박하면서 약간 밀려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임파선까지 다 전이가 되어 있었다. 폐까지 침범하기 직전에 발견된 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작은 종양을 느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진짜로 느꼈다. 그 혹이 내 목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숨이 막혀서 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뜬눈으로 새우거나 앉아서 잠을 청하곤 했다. 처음엔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목에 뭐가 걸린 것 같다고.
그러자 목 안을 살펴보던 의사는 역류성 식도염 같다며 2주분의 약을 처방해주었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본 적이 있던 나는 약을 먹으면서도 호전되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좀 더 큰 종합병원에 갔다. 그러자 의사는 목부분 초음파 검사를 해보잔다. 그런데 초음파를 관찰하던 의사가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이거 모양이 좀 의심스러운데."
그래서 내가 뭐가 의심스러우냐고 물어보니 암일 수도 있다고. 일반적인 물혹은 동그란데 이렇게 삐죽삐죽한 모양은 암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 후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들을 공포에 떨어야 했다.
나중에 의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떻게 병원에 올 생각을 했냐고. 목에 혹이 느껴져서 그랬다니까 의사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7,8센티미터 되는 혹도 못 느끼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어떻게 5미리짜리 혹을 느끼냐고. 나보고 덕을 많이 쌓으신 분 같다는 것이다. 상태로 보아서 조금 더 늦었으면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전이 상태였다는 것. 보통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이걸 느끼다니 대단히 lucky 한 분이라나?
병원을 나온 lucky 한 나는 이 행운을 감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는 생각.
'지겹다. 지겨워. 정말. 결국 나도 이렇게 걸린 거야?'
갑상샘암은 사망률이 낮다고 말하는 걸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인터넷을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갑상샘에 생기는 암에도 네 종류가 있는데 어떤 종류는 발견하자마자 한 달 안에 사망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전이가 문제였다. 감상샘에서 출발하여 여기저기 전이가 되어 죽는 것이다.
그 후로 암 판정을 받고 더 큰 병원에 가서 재 확진을 받기까지 힘든 시간을 견뎠다. 결국 수술을 했는데 죽진 않았지만 체력이 무지하게 떨어졌다. 수술 후론 절대로 무리하게 일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암에 안 걸렸으면 동생처럼 무리하다가 더 큰 병에 걸렸겠지? 이제 조금 일하고 쉬고, 또 조금 일하고 쉬고 이렇게 가늘고 길게 살다 갈 거다. 동생은 굵고 짧게 살다 갔지만.
동생이 남긴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건강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것. 그래서 암에 걸려도 제일 싼 걸로 끊게 만들어 준 것. 그리고 그 암에 안 걸린 것보다 오히려 내 몸을 보살피고 평생 관리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엔 '행운 중 행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