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최고의 교사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무엇일까? 아웅다웅 다투고 잘난 체하고, 비열한 짓거리를 해대는 곳에 뿌리면 모두 없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 그건 죽음이다.
동생이 떠난 후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는 것이 있었다. 그건 동생을 뛰어넘은 것이었는데 바로 죽음이었다. 바쁜 일상에 파고들고, 때론 멍한 휴식 사이사이 파고들어 날 선 질문과 멍텅구리같이 물어보곤 하던 그 짓궂음.
"넌 대체 왜 사는 거니?"
"어차피 다 쓸모없어지잖아. 뭘 그렇게 아등바등대?"
"넌 동생에게 해 준 게 하나도 없어."
"넌 그저 잠시 살다가는 시냇물 같은 거야. 허무함의 극치지. 안 그래?"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부단히 고갤 흔들어야 했다.
"아니야. 내가 뭔가 할 일이 있을 거야."
"쓸모없어지면 어때? 지금은 누군가에게 쓸모 있다고."
"동생이 그래도 나 재밌다고 했대."
"잠시 살다 가더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되면 되잖아. 안 그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댔어. 그러면 적어도 허무하지 않아."
'적어도 허무하지는 않아.'
그렇다. 허무하지 않게 만들면 되었다.
남은 가족들에게 문신처럼 남은 동생. 동생은 적어도 할 일을 하고 있다.
동생이 가고 난 후 남편은 얼마간 술을 끊기도 했다. 가족을 남겨두고 가지 않으려는 마음과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친척들은 우리 집안에서 벌써 몇 번째인 암에 대해 경각심을 가졌다.
나는 자신을 혹사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곧바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게.
한 사람이 죽고 나서 잿더미처럼 사라진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어차피 잿더미가 될 거라면 막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영화 '책도둑'에서는 사람의 일생은 죽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말해준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고생을 하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행복해진다. 전쟁은 인륜에 반하는 사람과 인류애를 실천한 사람으로 나눈다. 주인공은 그 사람들의 모습을 책을 써서 남긴다. 어차피 그래 봤자 다 죽는 걸 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잖아? 하고 질타하고 싶어 진다.
우린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남는다. 남겨진 가족들의 기억이나 책 속에. 특히 책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도 계속해서 남아있다.
전자책이 나오고 있지만 인쇄책의 장점은 따라올 수 없다. 전기가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종이책은 언제 어디서건 펼쳐 볼 수가 있다. 특히 후대에까지 보존하려면 디지털 방식은 불안하다. 기계 작동방식의 호환성도 그렇고.
첫 책을 내고 나서부터 책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자부심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어느 땐 부담감이 부풀어 올랐다가 어느 땐 자부심이 오른다. 요즘은 의무감이 든다. 동생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동생은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 세상을 살다 갔다.
요즘 시대를 살았다면 책을 여러 권 썼을 것 같다. 욕심이 많고 필력도 좋았다.
나는 동생이 살다 간 흔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단지 상처를 덤덤히 기술하기가 어려웠고 필력이 되지 않아 미루었을 뿐.
이제 상처를 객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필력이 좋아진 후에 쓰려면 평생 못쓸 것이다.
동생을 글로 살려내다 보니 동생이 살던 시대의 모순이 눈에 들어온다. 대기업의 횡포, 남녀 차별, 지나친 노동시간, 엘리트들의 오만 등.
그런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과로사, 돌연사나 암으로 죽는 게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다. 국민소득도 3만 불 고지를 넘어섰다.
이제는 물질적으로 말고 정신적으로도 잘살고 싶다. 인간답게 정의롭게 평등하게, 행복한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