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도 가슴에 묻는다

때론 내 말이 동생을 더 힘들게 했다

by 허윤숙

"이번엔 도저히 못 참겠어. 이혼할래."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해보자. 저번에도 용서해줬잖아. 그 여자도 직접 만나서 앞으로 다신 남편 못 만나게 해."

그러자 동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야. 다신 못하겠어. 첫 번째 바람 폈을 때 그 여자 만난 걸 후회했어. 카페에 나타나자마자 남편이 그 여잘 몸으로 막는 거야. 내가 해코지라도 할까 봐서 그러는지. 그래서 내가 그 여자한테 막 뭐라고 했더니 그 여잔 울고 남편이 그 여잘 두둔하잖아.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냐고. 그리고 그 뒤로 괜히 만났나 싶었어. 여자 얼굴이 남편에게서 계속 떠오르는 거야. 이러다가 내가 미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 이번엔 도저히 여잘 만날 자신이 없어. 그 후유증이 너무 심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뭐라고? 제부가 그 여자 편을 들었다고?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게, 하고 많은 남자들 중에 왜 하필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거야? 네가 뭐가 모자라서?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그 남잔 얼굴 하나 반반한 거 외엔 아무것도 없잖아. 그래. 착한 거 있다. 남자가 그렇게 착하면 뭐해. 그렇게 착하니까 이 여자 저 여자한테 정을 주지. 내가 정말 속이 터져서."

그러자 동생이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난 그래도 그를 사랑했어. 그리고 결혼까지 한 이유는 그 사람이 나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야. 난 늘 외로웠거든. 부모님도 나에게는 사랑을 준 적이 없었어. 평생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죽는 건 너무하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나를 정말로 사랑해줄 줄 알았다고."


그 말을 하고 동생은 전활 끊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에게 어떤 상담도 해오지 않았다. 동생은 그 일로 곧바로 이혼하고는 사업에 매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동생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다분히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동네 아줌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동생에게 한 말은 상담자의 유형중 최악이었다. 그때 동생은 인생 최대의 위기였고 그럴 땐 이성적으로 해결해주거나 아니면 정서적으로 위로가 되는 말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은 동생 남편도 탓하고 동생도 탓하는 이중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아무 대안도 없이.


가족에게는 상담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 같다. 이성적인 판단이 서기도 전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일어나 내가 피해자인양 흥분을 해대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적어도 한 다리 건넌 친구나 선배였으면 덜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애정이 있지만 공감에 있어서 심리적인 거리가 있다.


동생은 그 후 나를 찔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친한 후배랑 같이 산 것이다. 그 후배는 자신이 힘들 때마다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핑계가 있다. 나는 동생의 이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이 100이라면 형제는 50, 경우에 따라서는 70쯤의 감정을 갖는 것 같다. 내가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동생을 위로하겠는가?


딸을 키우면서 그때의 실수를 번복할 때가 있다. 딸이 자신의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면 의연하게 대처해주거나 같이 가슴 아파해주면 될 것을, 화부터 낸다. 누구에게 내는지 알 수 없는 화, 부당한 일을 한 사람에게 내는 건지 딸에게 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결과다. 그러면 이내 딸이 그런다. 엄마는 상담을 청하면 무조건 가르치려들거나 화만 낸다고.


이제 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되는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게 두고, 가만히 손을 잡아주거나 고갤 끄덕이면 된다.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필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동생에게 이렇게 말해줄 거다.

"그래. 그 남자랑 결혼한 거 백번 이해해. 그 사람이 널 많이 사랑해 줬잖아. 우리 그걸로 만족하자. 너랑 인연이 거기까지밖에 안 되었나 보다. 그리고 넌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렸어."


전남편이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한 건 맞는 것 같다. 동생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힘들어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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