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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Nov 17. 2019

방탄소년단 뷔가 40대에 되고 싶은 것

남편을 꼰대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는 방법

최근 몸이 안 좋아져서 자연식으로만 먹고 있다. 즉 가공하지 않은 음식을 생으로 씹어먹거나 찌거나 굽는 정도로만 요리를 해서 먹는다. 그러자 감기도 걸리지 않고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뭐든 단순한 것이 아름답고, 순수한 것에는 힘이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뇌 구조상 곁가지가 많은 말은 임팩트가 없다. 그저 몸으로 받아들이는 말, 그 말에 함축성까지 있다면 오히려 뇌에 오래 깊숙이 박힌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인생 경력이 짧은 그들의 특징상 군더더기가 없다. 감정을 충실히 표현할 뿐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은 오늘 왜 화나 보여요?"

"아니? 나 화난 거 없는데?"

하다가 몸이 좀 피곤할 뿐인데 하다가 어제 늦게 자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다가 늦게 잔 건 집안일 밀린 거 하다가 그랬던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남편이 소파에 앉아 드라마 보던 장면이 떠오르다가 그만 화가 난 내 얼굴이 떠 오른다.


'그래 맞아. 나 화난 거.'

정작 나는 눈치 못 채다니.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표현할 뿐이다.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 단순성과 순수성이 힐링효과를 주기도 한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 뷔의 말이 그렇다. 그가 하는 말은 어린애스러우면서도 깊이가 있어 놀랄 때가 있다. 최근 그가 예전에 했던 말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40대 이후에는 무얼 하고 있을 거 같냐는 질문에 다른 멤버들은 노래를 할거 같다. 연기를 할거 같다. 등등이 나왔는데 그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저는 우리 아빠처럼 아이들 잘 챙겨주고 부인한테 매일매일 혼나는 가장이 되고 싶어요."라고.


매일 혼나고 싶다고?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가 설명하는 바에 의하면 자기 아빠는 가족을 너무 사랑하고 아이들의 소질을 개발시켜주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빠에게 잔소리를 하면 대꾸하지 않고 그야말로 방어력 제로의 태도로 일관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가정은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그의 말이 '별거 없네?' 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반대로 뒤집어 보자.

즉,

"저는 아빠처럼 아이들을 챙길 시간이 없이 바깥일만 열심히 하며, 부인에게 매일매일 호통만 치는, 카리스마 넘치는 가장이 되고 싶어요."


이 말에서 얼핏 부모님 세대가 떠 오른다면 분명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이다.

대부분 우리 시대 부모님의 모습이 그랬다. 아빠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살림하고. 경제권이 아빠한테 있으니 큰소리치고 호령하는 아빠의 모습. 또 부당한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부당한 시집살이부터 살림까지 보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엄마들의 모습.


이런 모습에 익숙한 남자들은 그 모습의 50% 정도를 알아서 구현하곤 한다. 우리 남편이 딱 그렇다. 시나리오가 바뀐 줄 모르고 이전 플롯만 생각하고 오류를 범하는 거다. 시대는 밀레니엄에 들어섰는데 아직도 부인에게 물 떠 와라. 과일 깎아 와라. 명령을 일삼는 남자들. 부인도 같이 맞벌이하는데.


그런 광경을 몇 번 당하고 나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지금이 몇 년도인데? 아무리 경상도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해서 내가 한 번에 몰아서 싸움을 건 적이 있다. 그때 방탄소년단 뷔의 대사를 써먹었다.


나의 직업 '작가+교사'의 장점을 십분 발휘해서,

한국 사회 일반가정의 모습이 조선시대 전기부터 후기까지 유교의 영향으로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 그래서 전기 인물인 신사임당은 남편이 처가살이를 하고, 후기 인물인 허난설헌은 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하고 단명해야 했는지. 현대사회에 와서는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요즘 한국사회 50대 부부의 맞벌이 비율과 기타 자료를 일일이 들어가며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뷔의 대사를 덧붙인다. 예전 시대에는 남자들이 여자에게 무조건 호령했는데 그게 바로 꼰대의 출발점이자 악의 축이라고. 방탄소년단의 뷔가 그랬는데 부인한테 매일매일 혼나는 남편이 되고 싶다고. 그건 남자가 못나서가 아니라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뷔가 아빠의 그런 모습이 안 좋아 보였으면 그런 말을 했겠냐. 화목해 보이니 그렇게 말한 거지. 아름다운 가정은 남자가 호령하지 않는 집안이다. 그리고 여자가 바깥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책임지는 일이 오죽 힘든 줄 아느냐며. 체력적으로도 훨씬 약한데.


그런데...

이 협박이 은근히 효과가 있다. 역시 뷔는 진정한 아티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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