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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Apr 10. 2020

지금 어떨까? 내 빈자리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드는 표는 안 나도 나는 표는 난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이 딱 그렇다. 언제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많은 일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니.


평소엔 헷갈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일단 전과가 없으면 최소한의 도덕성은 구비한 셈이다. 하지만 그 외에 중요한 것은 나에게 좋은 사람인지 아닌 지다. 그게 참 헷갈리는 게, 심심할 땐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가 없을 때 극도로 허전하고 생활이 불편할 정도라면, 또 무엇보다 보고 싶어서 못 견딜 정도라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또 나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연애하는 사이라면 더 그렇다.


남자 친구가 군대 간 동안 기다려주고 결혼까지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남자 친구가 군대 가기 전에는 긴가민가 하는 부분이 많았단다. 하지만 떨어져 있어 보니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매일 눈을 떠서 하는 모든 일상, 양치질이나 세수처럼 무의식적으로 지나친다. 마치 공기처럼 필수적이지만 느끼기 힘든 존재. 그래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마치 요술봉을 뿅 휘두른 것처럼.


동생이 갑자기 발병한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동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동안 내가 알던 동생의 모습은 이랬다.


나랑 세상에 태어나 얼만 안 된 시점부터 사사건건 투닥투닥 싸운 사람

나랑 어떤 면으론 닮았고 또 어떤 부분은 완전히 반대인 사람

웃음기 없이 툭툭 내뱉는 말로 주위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사람

평생 AI 같은 표정과 딱딱한 몸짓을 지녔던 사람



하지만 동생이 완전히 없어지고 난 후, 동생에 대해 알게 된 것들은 이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사람

겉으론 까칠한데 속으론 세상 따뜻한 사람

나만 몰랐던 많은 선행을 했던 사람

못난 나를, 그래도 언니라고 엄청 좋아했던 사람






지금은 계절의 여왕인 봄과 어울리지 않게 '빈자리'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많은 빈자리가 있다. 그 빈자리 중의 하나는 또 내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빈자리가 다른 이들에게 허전하지 않고, 심지어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간 듯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반성해야 한다.


자동차 백미러 위에 쓰여있는 글씨를 본 적이 있다.

'사물이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인지, 멀리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다.

내게 제일 가까이 있는 그분...? 남편에게 실험을 해 볼까? 내가 말없이 1주일 정도 사라졌다가 돌아오면 어떨까?



더럭 겁이 난다. 내가 짠~하고 돌아왔을 때, 오히려 남편 얼굴이 뿌옇게 펴 있을까 봐. 거기에 레몬처럼 상큼한 말투까지 얹어서  그래도 말만은,

"어디 갔다 왔어? 걱정했잖아." 하는데, 막상 얼굴은,

'좀 더 있다 오지 그랬어. 아주 안 와도...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한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 오늘부터 남편에게 바가지 그만 긁어야지.

적어도 내가 남편에게조차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는 사람이 되면 안 될 것 같으니.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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