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은 것이 없는 데도 체한 듯하여 또 손을 땄다. 시커먼 피가 나온다. 속으로 되뇐다. '역시 내 나이에 밀가루 음식은 안 돼.'
그 햄버거 집이 눈에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평소 강남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줄을 바깥까지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뭐지?' 했다. 나중에 그 집이 유명 수제 햄버거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줄을 서서 먹나궁금해졌다.
일단 재료부터 좀 다르겠거니 했다. 맛은 있었다. 다만 수제버거라는 이름에 걸맞게 햄버거 하나 나오는데 10분 이상이나 걸렸다.
옛날 일이 떠 오른다. 우리나라에 롯데리아라는 햄버거 매장이 처음 생겼다. 벼르고 벼르다 햄버거란걸 먹게되었는데, 특이한 음식의 조합이었다. 빵에다가 고기를 끼워 먹다니... 이러면서 순식간에 한 개를 먹어버렸다. 그러자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돈이 있었다면 두 개쯤 더 먹을 수도 있었다. 그 햄버거는 주문하고 돈을 내자마자 금세 내 손에 쥐어졌었다. 그 속도 때문에 나도 모르게 더 빨리 먹게 된 것 같다. 그렇게 흡입된 미국식 빵은 그 특유의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나를 홀렸다. 평소 거친 김치만 먹던 내 위에서 순식간에 녹아버린 방문객. 상황만 된다면 언제든지 내 위로 초대하고 싶은 손님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은느린 음식이 대접받는다. 음식이 빨리 나온다는 건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는 뜻이고, 그걸 데우거나 조립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갓 구운 따끈함이나 향이 사라진다.
요즘은'비싼 느림'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 느림은 정직하게 맛으로 연결된다. 마치 용광로에 철을 던져놓듯 위액이 불타던 시절엔'빠른 햄버거'도 없어서 못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나는 '느린 햄버거'도 소화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또 그에 합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나는 그 변화가껄끄럽다. 이는 여러 가지 폐해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현재 몸 상태부터 그렇다.
요즘 염색체 말단에 위치한 텔로미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나이가 들수록 세포의 회복력이 사라져 그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 게 노화라고. 이 길이가 짧아지는 동안 이미 신체는 여러 번 경고음을 울렸을 것이다.
"이제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있어요. 주인님.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시죠? 이제 몸이 고장 나도 금세 복구가 안 된다는 것이랍니다. 위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거?원자로 아니, '용광로 폐쇄 조치'한 지 한참 됐어요. 저렴이 소용량 믹서기 수준인걸요. 게다가 가끔 멈추기도 해요. 그러니 많이 넣지 마세요. 뚜껑이 안 닫힐 지경으로요. 조금만 넣고 천천히 돌려야 해요. 그래야 고장이 안 난답니다. 고장나면요? 사실 그게 진짜 문젠데요. 갈아 끼울 수리 부품이 없거든요. 그 회사가 문을 닫은 지 한참 되었어요. 어차피 구식 모델이잖아요. 요즘은 그런 모터 안 써요. 차라리 하나 사는 게 나을지도요."
이런 경고에 귀를 막으면 어떻게 될까? 매일 착실하게 숫자로 나에게 복수하는데도? 매일 경신하는 체중계에서.
생각해보면 이 과정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몸은 생애 처음 맞이하는 이 '느림'을 향해 절차를 밟아 차근차근 진행되어왔다. 하지만 내 기억은 늘 엇박을 내 왔다. 여전히 용광로 같은 위와 밝은 눈, 빠른 발에 대한 향수 때문에.
늘 느끼는 거지만 몸이 뇌보다 똑똑하다. 뇌는 다분히 감성적인데 비해 몸은 냉철하다. 온갖 반란을 주도하며 경고한다.
그 '반란군'은 고마운 존재다. 회복력이 떨어진 세포 재생 기능을 생각하면. 그래서 대표로 위가 먼저 약해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반대로 이 나이에 소화력이 좋아서 매일햄버거를 서너 개씩 먹는다면어떻게 될까? 몸은 온갖 질병을 일으키고,나의 텔로미어는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짧아져서 마침내 죽게 될 것이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시절은 나에게서 떠나갔다. '느려도 좋아.'가 아니라 '느려야 하는 시간들'이 오고 있는 것이다. 수제 햄버거 아니, 곰국처럼 내 나이에 맞는 '느림'을 연습해야겠다. 나의 텔로미어 길이를 지켜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