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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r 09. 2020

모든 옷들은 나와의 인연을 품고 있다.

사랑받았던 옷이나 버려졌던 옷들.

친구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급하게 장례식에 가서 본 친구의 눈은 허망함, 그 자체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이별 앞에서. 몇 달이 지난 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의 슬픔보다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 부부금슬이 워낙 좋으셨다고 한다. 항상 곁에 있던 아내가 사라지니 아빠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빠가 걱정되어 자식들이 번갈아 혼자 계신 아빠를 방문하곤 했는데, 어느 날 잠자리를 봐드리던 친구는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엄마가 눕던 자리에 놓여 있던 엄마 잠옷이다. 아빠는 그동안 엄마 대신 그 잠옷을 곁에 두고 주무셨나 보다. 그 잠옷은 평소 엄마가 즐겨 입으셨던 것이다. 친구는 엄마를 못 잊어하는 아빠의 이야길 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빠는 엄마의 체취가 남아있는 잠옷에 의지해 잠을 청하신 것이다. 그 잠옷은 엄마가 입는 시간 동안 헤지고 늘어지며 엄마의 몸을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옷이 갖고 있는 엄마와의 인연이었다.







집 정리를 하면서 오랜만에 버릴 옷들을 꺼내 놓았다. 거실 한편에 수북이 쌓여가는 옷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옷이 있었다. 연한 갈색 재킷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옷이다. 당시 꽤 거금을 주고 샀는데, 그 정도로 맘에 들었나 보다. 겨울만 되면 줄곧 그 옷을 꺼내 입었다. 친척 결혼식, 아하는 가수 콘서트, 중요한 모임 등. 어깨가 각이 져 있고 허리 라인이 들어가서, 살이 찌고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는 입기 불편해졌다. 재작년인가부터 입지 않게 되었다.  


그 옷을 몇 번인가 들었다 놨다 하면서 고민을 했다. 버릴까, 말까? 많은 추억이 스친다. 이 옷을 입은 10년간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얼마나 많은 설렘을 느꼈을까? 그동안 얼마나 행복했을까? 지금은 몸에 끼지만 처음엔 좀 넉넉했던 허리 품이었다. 허리품이 채워지는 10년간 내 인품은 얼마나 채워졌을까?


최근에 산 옷도 버릴 옷에 분류되었다. 그중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있다. 작년에 젊은 아가씨들에게 예전 엄마들이 집에서 입던 알록달록 홈드레스 같이 생긴 꽃무늬 롱드레스가 유행이었다. 어릴 적 엄마들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고 예뻐 보이기도 해서 사 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입으니 그 하늘하늘한 실루엣은 어디 가고, 어릴 적 눈에 익숙했던 엄마들 모습이 떡하니 거울에 보인다.


이 건 더도 덜도 아닌 말 그대로 '홈' 드레스다. 그 옷은 결국 나랑 이렇게 끝이 나나보다 했다. 참으로 굵고 짧은 인연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하물며 돈을 주고 사서 내 집에 들인 것 까지가 어딘가? 옷이란 게 꼭 입고 나가야만 되는 건 아니다. 내 눈길을 끈 것, 즉 내 피 같은 돈을 주고 사서 집에 들여놓을 가치는 있었다.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는 요즘 옷을 사는 일은 무척이나 손쉽고 빠르다. 저렴하고 예쁜 옷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막상 내 손으로 클릭하기까지는 수없는 망설임이 있다. 그 망설임 끝에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옷들. 화면을 보고 감탄하고 무엇에 홀린 듯 클릭질을 한다. 그리고 택배로 오기까지 기다리던 순간들. 하지만 막상 입어보면 영 아닌 옷들. 그래서 결국은 버려지는 옷들.


이런 옷들을 날을 잡아서 정기적으로 버리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양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덜 사게 된 것. 그러는 동안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그렇다면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려지는 옷들은 나에게 불필요했을까? 아니다. 적어도 잠시나마 기쁨을 주었고, 나에게 딱 맞는 옷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또 나에게 옷을 보는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수없이 버려진 옷들 덕분이다. 만약 내 체형과 취향을 완벽히 파악해서 그에 맞는 옷만 샀다면 평생 색다른 시도는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버려지는 옷들이나 오래 사랑했던 옷. 모두 다 한때 내가 선택했던 옷들이다. 당시엔 나에게 최선이었을 테니 말이다. 설령 그 당시 내 기분과 주머니 속 사정과 혹, 휘황한 조명 불빛 때문에 착오가 일어난 것일지라도.


금세 떠나간 옷, 또 오래 머물렀던 옷, 나는 그 옷들을 모두 사랑한다. 왜냐하면, 한때 나타나 나를 만들고 떠난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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