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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12. 2020

벽난로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서툰 냄새로 가득했던 내 젊은 나날들

텔레비전에서 집을 구하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진행자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꺄악~" 하고 소릴 지른다. 카메라가 비춘 곳은 벽난로였다. 그 벽난로 안에는 나무 장작이 들어 있었다. 집에 대해 설명하시는 분이 말했다. 

"이 벽난로는 전기로 때는 게 아니에요. 진짜로 나무를 태우는 거예요."








요즘은 집이 추워서 덜덜 떠는 사람이 별로 없다. 외풍이라는 말도 사라졌다. 건축기술이 그만큼 발달되었다. 건축 자재는 특별히 단열과 보온 등에 집중해서 만든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대부분의 집은 추웠다. 연탄을 주로 땠는데 종이 장판을 바른 방안에는 아랫목, 윗목이란 말이 있었다. 윗목과 아랫목은 그 집 식구들의 서열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가장은 따뜻한 아랫목에 앉고 서열이 낮으면 윗목에 앉았다.


교대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아 김포에 있는 시골마을 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 학교는 강화도 인근에 있는 깡촌이었는데 마을 주민 전체가 인삼을 재배했다. 


다들 새벽 네시쯤 기상해서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드는, 전근대적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 학교엔 조개탄으로 때는 난로가 있었다. 그 난로는 얇은 양철 연통으로 연결되어 연기가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조개탄을 때는 일은 나에게 '전투'였다. 겨울 아침이 춥다 싶으면 일찍 나가야 했다. 난로를 때워야 했기에. 난로에 불을 지피는 일은 도시 출신인 내게 낯설고 힘든 일이었다. 아침부터 학교 광에서 조개탄을 퍼 나르고 나무 장작에 불을 붙여 조개탄에 불을 넣어야 했다. 불을 때다 보면 시커먼 그을음에 그날 입은 투피스 정장은 새카매졌다. 또 조개탄을 만진 손으로 코를 쓱 문질렀다가 새카매져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놀렸다.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조개탄 냄새가 있다. 불완전 연소된 나무와 조개탄이 어우러져 좁디좁은 금속 난로 안에서 타던 냄새. 불 때는 데 서툰 젊은 여교사가 아침 일찍 수선을 떤 결과로 얻어냈던 온기의 냄새다.


그 난로는 화기 조절이 안 되었다. 난로 가까이 앉은 아이들은 1교시가 지나면 얼굴이 벌게졌다. 또 멀리 앉은 아이는 발이 시리다고 난리였다. 미숙한 여교사는 어쩔 줄 몰라서 시간마다 아이들을 교대로 자리를 바꿔주었다. 


연통에서 연기가 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그 틈을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었다. 그 연기가 연탄가스처럼 아이들을 질식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후 난로 안에는 처절하게 자신의 몸을 태운 조개탄 재가 놓여 있었다. 펄펄 날아다니는 그 시커먼 재까지 다 치워야 그 날의 난로 전투는 끝이 났다. 


요즘 학교에선 냉난방기가 잘 되어 있어 교사가 '난로 전투' 할 일은 없어졌다. 

또 가정에서는 주로 아파트에 사느라 난로 구경할 일이 좀처럼 없다. 


그때 그 난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가끔 전기로 불이 들어오는 벽난로로 보이거나 주택용 벽난로가 눈에 뜨일 뿐이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덩그러니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전에는 항상 아이들이 먼저 와 있었고,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부터 챙겨주랴 집 치우랴, 두 손 두 발을 동동거렸다. 또 뒤이어 오는 남편에게 저녁상을 차려주며 나만 고생하는 것 같아 투덜대던 시간들. 이제 전처럼 발을 동동거리며 저녁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마침 남편에게서 밥을 먹고 온다는 문자가 왔다. 텅 빈 거실에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한 때는 퇴근해서 혼자 이렇게 앉아 있어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이들이 둘 다 대학에 들어가면 빨리 주택으로 가야겠다. 그리고 한쪽 벽에 꼭 벽난로를 두어야겠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라도 있으면 거실이 덜 조용할 것 같으니. 게다가 내 손이 부쩍 야물어졌다. 나무든 조개탄이든 제대로 때울 수 있을 테다.


그 벽난로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아마 참나무 장작이 제대로 연소된, 구수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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