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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May 06. 2020

정신이 번쩍 드는 한 마디

때론 따끔한 말이 위로가 된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특히 자신의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중요한 시험에  떨어진 경우 등-이 생겼을 때 말이다.

그땐 토닥토닥해주는 말보다 등짝 스매싱 말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오기가 나서 훌훌 털고 일어서게 해 주려면.





20대 시절엔 아나운서가 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텔레비전 밑에 뜨는 공고를 보고서야 겨우 시험이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지원서를 내려면 원서를 들고 직접 여의도로 가야 했다. 또 나이 제한이 있었다. 여자는 만 24세까지만 지원할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장애를 뚫고 kbs 아나운서에 지원을 하였다. 그리고 1차에 덜컥 합격이 된 것이다. 1차만 해도 20:1의 경쟁률이었는데... 2차는 면접과 실기였다.


면접과 실기는 동시에 이루어졌다. 복도에 대기하는 동안 멘트 종이를 미리 나누어 주었다. '고르바초프' 등 어려운 발음이 잔뜩 들어간 뉴스 멘트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어진 멘트를 달달 외웠다. 원고를 보고 읽을 수도 있었지만, 프롬프터가 없는 상황에서는 정면을 응시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실기는 무사히 잘 치렀다. 당당히 앞을 보고 했기 때문이다. 떨지도 않았다. 그러자 심사위원 다섯 명이 일제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먼저 질문을 하려는 경쟁도 있었다.


뜻밖의 호응에 업이 된 나는 이력서에 있는 내용과 다르게 대답했다. 뭐든 색다르게 표현하는 습관이 여기서까지 발휘될 줄이야. 예를 들어 이력서에는 취미가 독서라고 썼는데 막상 대답하려니 평이한 것 같았다. 그래서 '수영'이라고 좀 더 역동적인 것으로 대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력서에 있는 내용과 다르게 대답하면 감점이 된다고.


면접시간은 꽤 길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대략 10분을 넘지 않았는데 나는 30분가량이나 보고 나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무슨 면접을 그렇게 오래 했느냐고 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말하길 자긴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인데 항상 2차까지 합격했고 3차에서 탈락했다는 것. 그리고 2차에 합격하는 경우엔 면접을 오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도전이 깨끗이 무너진 것.


그 뒤로 깊은 방황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그 시험이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 그런 거라고 했다. 친한 친구들은 아깝다고 하면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절망감에서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나는 반복해서 필름을 뒤로 돌리고 있었다.

'의상이 문제였어. 나중에 보니 면접 의상으로 밤색은 기피 색이던데. 감색이나 검은색을 입었어야 해. 대기실에서 보니 여자들 대부분 감색 투피스를 입었었잖아. 메이컵도 문제였어. 어떤 수험생은 메이컵 아티스트가 따라와서 해주었잖아.'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대학 방송반 선배였다. 그 선배에게 내 마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대학 명예를 위해서라도 붙었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난 지금 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요."

그러자 그 선배가 예의 그 냉철한 이성을 휘둘렀다.

"2차에 떨어진 사람이 너 말고도 얼마나 많았겠니?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말이야. 3차까지 올라가서 떨어진 사람은 20층에서 뛰어내려야 되게?"


선배 말이 맞았다. 나는 고작  많은 탈락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특별히 잘 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닌, 그냥 극소수 합격자 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일 뿐. 너무 조금 뽑는 그 시험이 이상한 것이었다. 나는 젊었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거기만 매달릴 이유도 없었다. 이번 시험이 세 번째 도전이라는 아나운서 남자 수험생도 떠 올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름시름 앓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밥 한 그릇을 금세 먹어 치웠다. 그리고 아나운서는 깨끗이 포기하고 다음 직업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절망에 빠졌을 때 위로하는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마냥 들어주고 다독여줄 수도 있고, 논리적으로 절망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데도 계속해서 징징거리고 있을 경우, 따끔한 한 마디가 오히려 힘이 다.


물론 평소 관계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나를 챙겨주었고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람이 한 마디 해주는 따끔한 충고는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청량제다.


적절한 말 한마디. 여기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위력이 있다. 오늘 누군가 내 한마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 상황을 적당히 보아가면서.


이미지 사진: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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