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서 읽어라

쉼표( , )는 숨표( , )다

by 허윤숙

하늘-천 따지-이 검을-현 누루화-앙


어릴 적 한자는 이렇게 소리 내면서 외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당의 흔적이 남아있던 것인지.

한자를 쓸 땐 그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네모난 틀 안에 갇힌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한자. 어디에서도 소리의 높낮이나 호흡의 필요성은 보이지 않는다. 한 호흡에 내리 달린다.- 하늘천 (天) 따지 (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글자는 볼 때와 읽을 때 사뭇 다르다. 평면에 대한 입체의 차이, 눈에 대한 귀와 입의 차이다.

그 차이에 큰 획을 긋는 건 '숨'이다. 짧든 길든 글을 읽을 땐 호흡이 필요하다. 띄어쓰기를 잘 못하면 그 의미가 달라짐은 물론이다.


처음 책을 쓸 때 원고를 수십 번이나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소리 내어 읽기를 반복했는데, 눈으로 읽을 땐 짧은 구절이 읽다 보면 길게 느껴지곤 했다. 또 소리 내서 읽어야만 비로소 어색한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소리 내어 읽는 건 암기에도 효과가 있다. 메모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외워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소리 내서 읽으면 쉽게 외워진다. 귀와 입, 눈 세 가지 감각이 각자의 역할을 조금씩 분담하기 때문인가.


글의 길이가 길어질 때나 강조, 또는 의미를 구별할 때 쉼표를 찍는다. 이를 '숨표'와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다. 기호 모양은 같지만 '숨표'는 음악 부호다. 악보에서 노래할 때 호흡하는 부분에 표시한다. 둘은 이름만 다를 뿐, 기능이나 모양은 같다. 글에서도 쉼표가 있으면 숨을 쉬며 읽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이 소리 내서 읽지 않으니 쉼표의 기능을 쓰지 않을 뿐이다. '소리 내어 읽기'는 우리 어릴 적엔 익숙했던 모습인데 말이다.


요즘은 글을, 특히 '숫자'를 소리 내서 읽지 않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보면. 그 많은 택배물량을 하루에 소화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지. 분류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일이다. 게다가 아파트처럼 밀집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면 모를까, 주택단지에서 배달을 해야 하는데 숫자를 소리 내지 않고 읽었다면.


죽기 직전 참다못해 문자를 보냈던 택배기사의 글이 어른거린다. 주택이라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금까지(새벽 4시) 일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으냐는.


무리하게 주어진 물량을 소화해야 하는 업계의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그리고 배달 건수의 숫자를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소리 내서 읽기를 바란다.


아파트 배달 건수 몇 건,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의 배달 건 수 몇 건,

달동네의, 계단이 몇 개나 있는 동네의 배달 건수 몇 건,


이 모두를 따로 읽고, 숫자별로 숨을 골라야 한다.

무엇보다, 숨을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 쉼표를 정확히 찍어가면서. 그런 후 이런 말을 가슴에 새기는 것이다.


쉼표( , )는 숨표( , )다.

사람은 숨을 제대로,
제때에 쉬어야 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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