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거였다. 그것도 두 번이나. 첫 번째는 화재사건으로 인해서다. 네 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고 계셨고 나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동생은 두 살 배기였는데 이 시기는 가만히 못 있고 이것저것 저지를 때다. 당시엔 성냥을 많이 쓰다 보니 대용량 포장으로 나오는 팔각 성냥이라는 게 있었다. 그 성냥은 어른 주먹보다 큰 팔각 종이 통에 성냥이 빽빽이 일어서 있는데, (최근 학생들에게 이 팔각 성냥을 설명할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아하. 빼빼로처럼요?'라고 했다.) 통 바깥 옆면에는 인이 칠해져 있어서 성냥을 갖다 그어대면 불이 붙었다. 평소 어른들이 불 붙이는 걸 빤히 보고 있던 동생이 그 일을 실험해 본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불이 붙자 옆방으로 도망갔다. 나는 둔하게도 방바닥이 다 타도록 잠만 자고 있었다.
단 그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워낙 인상 깊은 장면이라 아직도 그 소리와 불이 타는 소리가 묘하게 콜라보되어 들린다.) 바로 무 써는 소리다. 당시 한옥 구조상 부엌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무써는 소리가 들리자 어린 아기는 즉각 눈을 떴다. 내가 아기 식성치곤 특이하게도 생무를 날것으로 씹어먹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자다가 그 소리에 눈까지 뜨다니.
어린애가 자다가 갑자기 무 써는 소리를 듣고는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간 것이다. 동네 어른들은 그 에피소드를 두고두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꼭 덧 붙이는 말이 있었다. "무가 목숨을 살렸네. 근데 어린 아기가 무를 좋아하는 게 참 신기하네."
나는 당시 속으로 그런 말을 했다. '무만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먹을 건 다 좋아해요. 단지 무를 더 좋아하는 것뿐이지.'
그 뒤로 다섯 살쯤 되어서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고 한다. 당시 외할머니는 가평에 사셨는데 외할머니 집은 말 그대로 동화책에서만 보는 순수 초가집이었다. 집 옆에는 블록공장이 있었는데 구경할 거리가 참 많았다. 하루 종일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서 물을 붓고는 나무로 된 틀에다 넣고 찍어댔다. 그렇게 찍어낸걸 며칠 굳히면 네모반듯하고 하얀 시멘트 블록이 탄생하였다. 그 블록공장과 할머니 집 사이에는 블록으로 쌓아 올린 벽이 있었다. 그 벽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벽이 부서진 잔해물들은 내게 소꿉놀이 소재였다. 그 부스러기들로 떡을 만들고 블록놀이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가 시장에 간다고 하셨다. 그 전엔 시장에 가시고 난 후 혼자 놀았는데 그날따라 외할머니가 나에게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하셨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외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는 걸로 정했다.
시장에서 무슨 간식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 집에 돌아왔을 때 펼쳐진 광경은 눈에 선하다. 외할머니 집 담이 와르르 무너져 있던 광경이. 나중에 듣기로 그 블록공장 인부가 운전미숙으로 사고를 낸 것이다. 차를 후진하다가 너무 많이 가는 바람에 담을 들이받았다. 중요한 건 담을 들이받은 시점이다. 바로 내가 외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선 직후였다고. 어른들은 이를 두고두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죽을고비를 또 넘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기면 장수한다고 덧붙였다. 어린 마음에 꼭 한번 더 죽을 고비를 넘기리라 생각을 하기도. 여기서 어른들이 거론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 있다. 두 번째 내 목숨을 살린 것도 먹을 것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생명의 은인인 무에 이어 두 번째 생명의 은인도 먹는 거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그날따라 시장에 따라나선 게 다행이라고만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근사한 이유가 아니라 먹을 것에 끌려 목숨을 건졌다는 게 창피했다.
화재사건이나 교통사고가 났다고 모두 죽는 건 아니다. 요즘 생각해보면. 하지만 예전에는 의료기술이 형편없었고 병원비가 워낙 비싸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죽는 사람이 많았다. 종이 장판이 훨훨 타는 안방에서 이불 덮고 누워있던 것이나 대형트럭에 들이 받힌다는 건 말 그대로 즉사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 뒤로도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 마침 그 시간 그 공간에 갈 일이 있다가 취소된 적이 있다. 내가 모르고 지나친 죽을 고비는 더 많았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짐작할 수 없는 우연한 죽음의 기회는 얼마나 될까?
최근 정부는 코로나 19 예방차원으로 '3단계 거리두기'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런 시기엔 방안에 콕 박혀있는 게 제일 안전할 수도 있다. 점점 심각해지는 무증상 감염자들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돌연사도 많아지고 있다. 작년엔 지인이 자다가 갑자기 돌연사했다. 가족들이 부검을 원치 않아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 점점 예측 불가능한 죽음이 우리 주변을 맴돈다. 생각해보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만 공포일까? 죽을 시점을 아는 건 더 큰 공포일 것이다. 그래도 죽는 순간을 미리 알면 그 시점까지 더 계획적으로 살아갈 수는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죽은 사람들은 우연한 사고의 피해자이다. 그 시간 하필 그 장소에 갔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같은 장소에서 호흡한 죄로. 그 '우연성'이 무섭다. 그 시간에 거기 있었던 이유라는 게.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건 면역력(체력)뿐이다. 똑같이 코로나에 걸려도 면역력이 약한 노인들이나 기저 질환자들이 사망할 확률이 높으니.
어린 시절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도 알고 보면 건강 덕분이다. 그 당시 안 먹고 빼빼 말랐던 동생에 비해 나는 늘 먹을 것을 밝히고 토실토실했다. 음식에 대한 유혹이 워낙 컸고 그 유혹이 결국 나를 살렸다.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
지금도 똑같다. 위생을 철저히 하되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챙겨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그리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것. 이 위기에서 그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우연'이라는 끔찍한 괴물이 우릴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앞으로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연'과 '건강 관리 소홀'이 합쳐져 세상을떠나가기 전까지 말이다. 남은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