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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Oct 07. 2021

끝까지 써야 하는 건  펜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에게 상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일주일간 과자나 빵을 안 먹었다거나 매일 운동을 했다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간다거나 텀블러를 들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는 일등. 최근 특별히 나를 칭찬하고픈 일이 생겼다. 펜을 잉크가 더 이상 안 나올 때까지 쓴 것이다. 뿌듯한 마음에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평소 필기구에 애착이 많은 편이다. 그래도 컴퓨터 자판으로 글을 쓰는 요즘 시대에 펜을 잉크가 다 없어질 때까지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악필 교정 차 글씨체 연습도 해 보고, 요즘 아이들처럼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도 해 보았다. 그러자 금세 다 쓰게 되었다. 이렇게 끝까지 다 써 본일이 얼마나 될까 내친김에 화장품도 정복하기로 했다. 스킨이나 로션 등은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이라면 끝까지 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색조 화장품의 경우 특히 아이섀도나 립스틱 등은 색조 별로 있다 보니 쓰다 말다 하는 일이 흔하다. 유통기한을 잘 모르기도 하고 요즘은 특히나 마스크를 쓰니 화장품 소모가 적다.


 물건만 그럴까? 결혼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치 내가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처럼 대하기 일쑤다. '내가 사랑한 남자는 저렇게 말이 많지 않았어.' '어느 날 밤 갑자기 뒤바뀐 게 분명해.' '내가 사랑한 여자는 저렇게 우악스럽지 않았어.' 조금만 손해 날일이 있으면 악악거리며 싸우는 부인을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면 변질이 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도 유통기간이 있는 것인지. '20대의 날씬했던 몸매와 매력적인 성격과 말투는 어디로?'  각자 그때와는 다른 원자의 조합이 집안에 들어앉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유통기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뇌에서 분비되는, 기껏해야 1년에서 3, 4년 정도 분비되는 화학작용일지도. 그 호르몬이 아니라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 다소 동물적인 이유 말고 중요한 게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무기 말이다. 즉 공감능력과 상상력이 진짜 사랑의 핵심이 아닐까. 2세를 낳고도 길고 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사랑은 대개의 경우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 경우에만 완성된다. 즉 어떤 경우라도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다. 그 길에서 자존심을 일찌감치 집어던져야 한다. 때론 나를 무시하거나 나에게 더 이상 사랑을 못 느끼는 사람을 끝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니까.


 이런 사랑 사용법을 실천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는 중국 상해에 살 때 조선족 지인에게서다. 그 지인은 30대 후반의 여성이었는데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한 여자 친구가 자신과 친한 남자 친구와 사귀게 되었다. 남자는 무척 가난했다. 여자는 얼굴이 예쁘고 매력이 있어서 남자들이 많이 따라다녔다. 하지만 남자의 헌신적인 구애에 결국 둘은 동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여자가 변심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아주 돈이 많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반전이 있다. 남자는 그 후 죽도록 노력하여 거부가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길 배신하고 떠난 여자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남자가 돈이 한 푼 없는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여자가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어렵게 산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 후 남자는 속으로 고소해했을까. 아니다. 그는 가슴 아파했다. 자신은 이제 돈이 많아서 그녀를 얼마든지 호강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꾀를 내었다. 둘을 다 알고 있는 내 지인에게 부탁했다. 당시 집 한 채 살 수 있는 거금을 주며 여자에게 건네도록 한 것이다. 물론 비밀로 말이다. 갑자기 여유자금이 생겼다며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갚으라는 말을 하면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 둘을 낳은 30대 부부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인이 바람이 났다. 그것도 남편 친구와. 그 부인은 아이들도 나 몰라라 하고 외박하기 일쑤였고, 급기야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부인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쓰려했나 보다. 서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로 한 날이었다.( 그때 부인은 바람이 난 남자 집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댁에 보내고 집도 내놓은 상태였다. 이때 남편이 먼저 와 있었다.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서. 부인은 무슨 일인지 당황했다.


 남편은 부인이 소파에 앉자마자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부인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그러면서 둘이 만나게 된 날 이야기며, 첫눈에 반한 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둘이 첫아이를 낳은 날 얼마나 행복했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둘이 다시 시작해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 더 노력하겠다며.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면서. 이날 이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 부인은 전보다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에게 잘하는 부인이 되었다. 남편의 사랑이 부인의 바람기마저 잡은 것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랑도 끝까지 써야겠다. 사용기한이 다 된 것 같은 순간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근 마켓에 내놓을 수도, 분리수거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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