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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Sep 06. 2021

고난 근육

그 끝을 혹시 아는 사람?

'고난 근육'은 고난에 대응하는 근력을 말한다. 물론 내가 만든 말이다. 최근 고난 근육이 상당히 요구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니체가 한 말은 레전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내가 쇠처럼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그 뭐냐, '조물주' 내지는 '신'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간을 보는 것이다. '옛다 이 고난 좀 받아라.' 그런데 이걸 퉤퉤 하고 뱉어내 버리면?

그다음엔 입에 넣을 만한 걸로 잘게 잘라 주겠지.

아님 다른 걸 주지 않을까?

만약 미련하게 덥석 받아먹고 소화까지 한다면? 그다음엔..

아마 더 크고 강한 걸로 가져올 것이다. 어디까지 가나 보려고.






 최근 헬스를 다시 시작했다. 젊어서부터 헬스를 했지만, 아이들을 기르면서 소홀해졌다. 기구들을 오랜만에 다루니 낯설다. 야속하게도 자세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전의 근육도 사라지고 없다.


 트레이너가 와서 수시로 지적해주니 조금씩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잠자던 근육들을 일깨운다. 기구마다 겨우 맨 위 구멍에 핀을 꽂아 넣고는 근육량을 가늠해 본다. 구멍 개수의 차이는 근육량의 차이다. 어떤 기구는 아예 핀을 구멍에 넣지도 못하고 풀어서 위로 젖혀 올리고 한다. 그런데도 눈앞이 아득해지고 이를 악물게 된다. 이때 허벅지에서 전해지는, 근육이 갈가리 찢기는 느낌. '참아야 하느니라.' 하며 이를 악문다. 


 그때 구멍이 한참이나 아래로 가게 하고 중량을 들어 올리는 남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이를 악물 지도 눈을 감지도 않는다. 정자세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한다.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하나.


 상상해 본다. '고난 근육'을 구멍 개수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고. 그리고 궁금하다. 내 고난은 지금 맨 위에서 얼마까지 내려온 것일까. 그리고 그 밑이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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