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May 22. 2019

네모난 교실, 네모난 표정

행복하기 위해 줄여야 하는 숫자

동굴 속에서 살던 원시인들이 요즘 사람들의 삶을 보면 뭐라고 할까? 네모 상자인 아파트 속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아침이면 네모난 상자인 학교나 직장으로 끊임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할지도. 참 답답하게 모여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원시인들은 동굴이나 강가에서 살았다. 동굴은 둥글둥글한 곡선이고 강은 수평선이다. 또한 낮에 사냥하는 숲은 비정형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반해 아파트, 학교, 회사 건물들은 대부분 네모난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시사회에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비좁은 동굴 안을 넓히려고 도구를 이용해서 벽을 각이 지게 팠을 것이다. 강에서는 어떤가? 조개를 주우며 호젓하게 살던 몇몇 가정은 인구가 드러나면서 ‘수평선 조망권’을 잃어버린다. 결국 요즘의 여름 해수욕장처럼 강가에는 사람 얼굴만 가득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숫자가 늘어나면 보이는 풍경과 사는 방법이 바뀌어 간다.  

네모난 곳들 중 대표적인 곳은 어디일까? 아마 학교일 것이다. 학교는 건물도 네모, 교실도 책상도 네모, 가방과 책과 공책, 필통도 모두 네모나다. 네모난 칠판에 네모 글꼴로 이루어진 한글로 학생들은 하루 종일 공부를 한다. 교사는 네모난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네모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또다시 학생들은 네모난 학원 차에 타고 네모난 학원 교실로 간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네모난 핸드폰에서 잠깐 비정형의 게임을 즐길 뿐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신학기 불문율이 하나 있다. 신학기 한 달 안에 교실에서 규율을 못 잡으면 1년 내내 고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규율을 잡기 위해서는 되도록 엄격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이때 꾹 다문 입술과 부릅뜬 눈은 평행선을 이룬다. 때론 엑스자도 그린다. 눈꼬리는 위로 올리고 입 꼬리는 아래를 향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소를 지으려면 눈은 반달처럼 아래를 향하고 입술은 반대로 U 자형을 그리며 위로 향하게 된다. 이들의 연장선을 이으면 원형이 된다. 곡선은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학생들이 창의력을 기르려면 교사가 밝은 미소를 띠고 유머를 구사해야 한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이를 현실에서 적용했다가는 1년 내내 아이들에게 끌려 다닐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타고난 교사가 있긴 하다. 즉 유머 감각이 있고 늘 화사하게 웃어가면서도 권위를 지닌 교사이다.

그런 교사가 운영하는 학급의 아이들은 대체로 교사를 잘 따르고 학급의 규율도 잘 유지된다. 그러나 이처럼 하늘에서 점지해주는 교사는 극소수라는 것이다. 교사도 사람인지라 욱할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한다. 그런데 한 반에 평균 30명 이상이나 되는 아이들의 개성을 다 살려주고 엄격한 규율도 유지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하는 학급을 만든다? 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몇 년 전 운 좋게도 한 반에 학생이 16명 정도 되는 학급을 맡아서 가르친 적이 있다. 평소 가르치던 학생의 반만을 가르치니 힘은 덜 들고 효율성은 두 배로 높아졌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개성을 잘 파악하게 되었고 진도가 빨리 나갈 수 있어서 자유주제로 발표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가끔 학생들이 짝과 수다를 떨어도 전체 소음 강도가 높지 않아서 슬쩍 모른 척해 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장점들이 인원이 적은 학급에서 무한하게 펼쳐졌다. 가장 좋았던 점은 교사가 행복하니 아이들도 행복했다는 것이다.

교육계에 쌓인 문제들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대입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입 문제가 교육이라는 강의 본류라 한다면 그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는 지류들 중 하나는 아마도 학급당 인원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 학급당 인원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2017년 9월 기준으로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3.4명, 중학교 30.0명으로 전년보다 0.2명과 1.6명 감소했으나 OECD 평균인 초등학교 21.1명, 중학교 23.3명보다는 각각 2.3명, 6.7명 많았다.

대도시일수록 더 심각한데 이는 교육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교사가 웃는 얼굴로 학생을 대하고 학생들도 즐겁게 수업을 듣는 교실, 우리의 삶이 답답해 보인다던 원시인들도 이런 수업을 참관했다면 혹시, 부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일은 교사와 학생들의 행복을 늘리는 일이 되는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개구리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