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윤숙 May 27. 2019

내가 너무 서정적인 교사인가요?

어느 덜렁이 초등교사의 변명

교대를 나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파란만장한 다른 일을 하다가 18년 만에 교직으로 돌아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돌아온 교단은 전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먼저 초등학교 교사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대한민국 신붓감 1위 자리에서 내려오는 법이 없다. (내 나이가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먹고살려고 다시 시작한 일이지만 아이들 앞에선 그런 내색을 할 수 없다. 가끔 탐정 같은 아이들이 예리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선생님은 교사만 해 오신 것 같지 않아요. 나이는 많으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이유를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리지만 속뜻을 대충 눈치채게 된다. 일반 교사들하고는 확연히 다른, 다소 껄렁한 말투와 실수를 연발하는 덜렁대는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너 진짜 예리하다. 그래. 나 교사가 하기 싫어서 그만두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다가, 그래도 이만한 직업이 없더라. 우리나라에서 인기직업이고 애들 키우기 딱 좋잖아. 일찍 퇴근하고 방학도 길고. 그리고 내 나이에 이런 대우받기가 어디 쉽겠니?”     


그리고 덜렁댐으로 인한 실수를 덮느라 평소 아이들에게 엄청 잘해준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나 스스로 착각하고 산다. 나는 정말로 아이들한테 꽤 잘해주고 친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꽤 진실한 교사다.


사실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다. 학원 숙제만 해도 찬데 또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내가 학교 다닐 때 숙제를 워낙 하기 싫어했던 기억 때문에 공감능력 발휘 차원에서다...라고만 하기 에는 숙제 검사하는데 꼼꼼함과 똑똑함과 엄격함이 무척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검사하려면 눈을 부릅뜨고 틀린 것, 안 한 것, 못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힘들다.


숙제 안 해 온 학생을 혼내는 것도 내 성격상 힘들다. 숙제 안 해온 학생, 청소 안 하고 도망간 학생을 발굴해 내는 일은 영재 발굴보다 힘들다. 한번 간을 보이고 나면 애들은 그 틈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그 이후론 교사의 카리스마고 뭐고 다 끝장나고 마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내 인기 요인을 꼽자면 아이들에게 친절하다는 것인데, 이는 내 능력 부족에 대한 보상심리와 유난한 내 자유주의 사상 때문이다. 속박을 싫어하는 것은 나의 가장 큰 단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겐 자유주의가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범생 같은 분위기의 일반교사에 비해 말괄량이 같은 내 껄렁함이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대리만족감을 주나 보다. 물론 나는 이를 ‘서정성’이라고 포장하곤 한다.      

 

정성이 지나치게 폭발한 적이 있다. 하루는 국어시간에 길 잃은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때 아이들에게 내용을 읽어주다가 우리 집 강아지 생각이 났다.


당시 우리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을 두고 고민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반려견을 너무 싫어해서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집으로 보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리얼하게 하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쩌면 좋겠느냐고...


그러자 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평소 시끄럽던 아이들이 한동안 조용했다.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은 나랑 같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 우리 반에서 가장 개구쟁이인 남자아이가 내 책상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래서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학생은 말했다.


평소와는 다른 아주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선생님.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내가

“뭔데?” 하고 물어보니,

“선생님은 반려견을 너무 사랑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남편과 이혼을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   

  

나는 진심 어린 제안에 그건 조금 곤란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세월호 추모일에 관련 영상을 보여주다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 앞에서 뻘쭘했다. 그냥 눈물만 흘리는 것이 아니고 대성통곡을 하다니.     


숙제를 안 내주고 초등학생 땐 무조건 친구랑 뛰어놀아야 한다고 하고 음악시간에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틀어달라고 하면, '아이돌'까지 틀어주면서 내가 더 좋아하는 교사.


이런 걸 서정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예전이라면 분명 바로 옆에 붙어있던 교장실에서 교장선생님이 쫓아와서 혼을 냈을 것이라고.


그땐 우리 반 담당 구역 운동장에 낙엽만 떨어져 있어도 혼이 났다. 분명 가을이었는데 낙엽은 떨어지라고 있는 건데. 그때의 원한이 남아서 가을이 되면 아이들과 운동장 낙엽을 쾅쾅 밟으면서 놀기도 한다.      


가장 변화가 느리고 보수적인 곳인 학교도 지난 시간 동안 변하긴 많이 변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아마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를 위한 변명을 다시 한번 읊조려 본다. 나는 덜렁대는 것이 아니라 서정적인 것이다 라고.


그리고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놀아야 한다고. 그리고 더 행복해야 한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착해도 강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