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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윤숙 Jun 17. 2019

말만 예쁘게 하는 사람들

진심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며칠 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후배 사원이 하는 말이 자기는 다른 사람이 속으로 말하는 것이 들린 적이 있다는 거다. 오래전 일이다. 같이 근무하던 후배가 자기는 그 부서가 너무 시끄러우니 부서를 옮겨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사람들이 이 후배를 이상하게 본 이유는 그 부서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모두 과묵형이었기 때문이다. 어 누구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가 하는 말이 자기는 그들이 속으로 하는 말이 다 들리니 너무 시끄러워서 힘들었다는 것.


몇 년 전 방영되었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거기서 주인공인 이종석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남의 속마음이 들리는 능력이 있다.


후배는 시끄러운 것보다 괴로운 것은 상대방이 겉으로 말하는 거랑 속마음이 다른데 대한 배신감이었다고 한다. 분명 겉으론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고는 속으로 욕을 하더란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사람들에게 신뢰감이 사라졌단다.


후배 사원이 들은 것이 진짜 그 사람의 속마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치한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아무리 예쁘게 말을 포장해도 표정이나 제스처 등으로 속마음을 읽히기 때문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여자 후배가 있었는데 평소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남의 험담을 조금 한다는 것 빼곤 재미있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전화 사건 이전까지만.


하루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랑 있다고 했다. 내가 길게 통화를 한 것 같다. 오랜만에 통화를 한 거라 반가웠다. 후배가 괜찮다고 했고.


그런데 내가 전화를 끊고 나서 다른데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전화기가 잘못 놓여 있었나 보다. 후배가 친구랑 대화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내용이 충격이었다. 평소 나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말한 후배가 전화기 너머로 하는 말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나에게 서운한 부분을 친구에게 털어놓은 것이 아닌가? 내가 차마 챙기지 못한 부분을 지적한 거라 미안하기도 했다.


후배는 나에게 늘 친절하고 착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평소 말을 예쁘게 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후배인데...


우린 말을 예쁘게 하는 것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속마음은 언젠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바로 밑의 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은 나에게 한 번도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다. 두 살 차이가 나는데도. 동생은 말을 참 밉게 했다. 만약 내가 머릴 짧게 자르면 남자 같다고 하고 파마를 하면 아줌마 같다고 하고. 뭘 해도 좋은 소릴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기가 싫어서 동생을 미워한 적이 많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미운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슬플 때가 있다.


동생이 말만 밉게 했다는 것을 안 것은 너무 늦은 때였다. 동생을 화장하고 오는데 그 당시 동생 남자 친구가 나한테 말을 했다. "세정이가 윤숙이 언니 이야길 참 많이 했어요. 좋아하는 언니라고.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고요."


나를 좋아했다고? 그렇게 무시하고 언니 대접을 안 해주더니...


동생은 내 앞에서 크게 웃은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씩 웃는 것이 전부였다. 츤데레의 여자 버전이었다. 그 특유의 웃음이 그립다. 그리고 동생이 나를 싫어한다고 착각했던 시간이 아깝다. 때론 표현이 서툴러서 밉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생이 그랬던 것이다. 가족임에도 그걸 포용하지 못한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진심을 알아보는 눈이 있으면 좋겠다. 가족끼리 오해하다가 먼저 보내는 일이 없게. 아직도 둘러보면 많다. 아이들, 남편, 친구들. 대신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눈도 동시에 생겼으면 좋겠다. 겉만 볼 게 아니라 사람 속을 보라는 것. 그것은 동생이 남기고 간 많은 것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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