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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드러나는 과거의 그림자

프랑스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 미카엘 하네케의 걸작

by 김형범

2005년 개봉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히든(Hidden)'은 제목 그대로 '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어 원제 '카쉐(Caché)'와 마찬가지로 '숨겨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 영화는,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감춰진 역사의 아픔을 예리하게 파헤칩니다.

영화 히든(2005)_프랑스 포스터

영화는 파리의 중산층 가정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시작됩니다. TV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인 조르주와 그의 아내 안느는 어느 날 자신들의 일상을 담은 수상한 비디오테이프를 받게 됩니다.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조르주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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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자신을 몰래 찍은 비디오를 보고 과거 같이 살았던 알제리 소년에게 누명을 씌운 기억이 떠오른다.

'히든'의 진정한 힘은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의 깊은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는 데 있습니다. 조르주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알제리 소년 마지드의 이야기는, 프랑스와 알제리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1961년 파리에서 일어난 알제리인 학살 사건이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면서, 하네케 감독은 프랑스 사회가 '숨기고' 싶어 하는 역사적 죄책감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 기억의 흔적이 현재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조르주의 불안과 죄책감, 마지드의 비극적인 삶, 그리고 그들의 자녀 세대가 겪는 갈등은 모두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히든'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현대 프랑스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립니다. 식민 지배의 유산, 인종차별, 이민자 통합 문제 등 오늘날 프랑스가 직면한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영화 속에 녹아 있습니다. 특히 영화 개봉 직후 2005년 파리 외곽에서 일어난 이민자 폭동 사태와 맞물려, 영화의 메시지는 더욱 강렬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하네케 감독 특유의 영화 스타일도 이런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정적인 롱테이크, 모호한 결말, 그리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히든'은 개봉 당시 세계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던지는 질문에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직면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역사의 그림자는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과거사와 씨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민 지배, 전쟁, 독재, 인권 탄압 등 우리 역사 속 어두운 장면들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히든'이 보여주듯,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화해와 발전을 위한 첫걸음일 것입니다.


'히든'은 우리에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일깨워줍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영화처럼 우리의 '숨겨진' 역사를 마주할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히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숨기지 말고, 직면하라. 그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이 영화는 티빙과 왓차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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