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범 Sep 16. 2024

관객이 만드는 예술: 오노 요코의 '컷 피스'

침묵과 가위 소리로 울리는 평화의 메시지

예술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오노 요코의 '컷 피스(Cut Piece)'는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1964년 처음 선보인 이 퍼포먼스는 관객을 단순한 구경꾼에서 작품의 공동 창작자로 끌어들이며, 우리 사회의 폭력성과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컷 피스'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오노 요코는 무대 위에 조용히 앉아 있고, 그 앞에는 가위가 놓여 있습니다. 관객들은 한 명씩 무대에 올라와 그녀의 옷을 잘라갑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이며 이 과정을 지켜봅니다. 공연은 그녀가 결정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단순한 설정 속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처음에 관객들은 조심스럽게 작은 조각만을 자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담해집니다. 누군가 그녀의 브래지어를 자르려 할 때, 오노 요코는 처음으로 반응을 보이며 손으로 가슴을 가립니다. 이 순간, 관객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실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컷 피스'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먼저, 이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노 요코의 찢겨나가는 옷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을 연상시킵니다. 관객들이 가져가는 옷 조각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기념품'이 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과 억압을 드러내는 페미니즘적 해석도 가능합니다. 오노 요코가 무대 위에서 취하는 전통적인 일본 여성의 자세, 그리고 그녀의 몸을 대상화하는 관객들의 행동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성차별적 관행을 상징합니다.


더 나아가 '컷 피스'는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오노 요코는 작품의 완성을 전적으로 관객에게 맡깁니다. 이는 예술이 더 이상 예술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컷 피스'를 보는 것은 일종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오노 요코의 침묵, 관객들의 긴장된 웃음소리, 가위로 옷을 자르는 소리가 어우러져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긴장감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폭력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오노 요코는 매 공연마다 자신의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기념품'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작은 디테일에서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관객을 작품의 중요한 일부로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미술관에서 '컷 피스'의 영상을 보게 된다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세요. 당신이라면 무대에 올라가 그녀의 옷을 자를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아마도 이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 예술의 의미, 그리고 평화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오노 요코의 '컷 피스'는 우리에게 예술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예술의 힘이자, 오노 요코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