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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Aug 06. 2024

실크로드의 신화적 여정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가 불교의 수호신이 되기까지

우리는 종종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화의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와 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의 연관성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초인적인 힘을 지닌 영웅입니다. 그의 상징적인 모습은 사자 가죽을 두르고 곤봉을 든 모습입니다. 이 이미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전역에서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메아 산의 사자를 죽이는 헬라클레스, 간다라(1세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은 그리스 문화를 동쪽으로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문화 교류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는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은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인 간다라입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로마 문화와 불교 문화가 만나 독특한 예술 양식을 탄생시켰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헤라클레스와 불교의 수호신이 융합되기 시작했습니다.

보리수 아래로 향하는 부처님께 길상초를 받치는 솟띠야, 간다라(1~2세기), 페샤와르박물관

금강역사, 산스크리트어로 바즈라파니(Vajrapani)는 본래 인도 토착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간다라 지역에서 헤라클레스의 이미지와 만나면서, 그 모습이 크게 변화했습니다. 사자 가죽을 두르고 무기를 든 모습은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키지만, 그 역할은 부처를 수호하는 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금강역사의 이미지는 실크로드를 따라 더욱 동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까지 이르렀고, 그 흔적을 우리는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의 어깨 장식에서 우리는 헤라클레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의 금강역사 부조 조각

이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넘어, 문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합니다. 우리가 '순수한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화 요소도, 사실은 다양한 문화의 융합과 변용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가 불교의 수호신으로 변모한 이 놀라운 여정은, 문화의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에게 더 넓은 시야로 문화를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되, 그것이 인류 공통의 유산의 일부임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요?


실크로드를 따라 헤라클레스에서 금강역사로 이어진 이 여정은, 문화의 힘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멋진 예시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이 신화적 여정을 통해 우리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인류의 공통된 이야기와 상상력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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