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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범 Jul 16. 2024

사랑의 발명

'위험한 관계'와 '스캔들'을 통해 본 근대적 사랑의 탄생

사랑은 인간의 가장 깊고 복잡한 감정 중 하나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의미와 표현 방식이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에로스(육체적 사랑), 필리아(우정), 아가페(무조건적 사랑) 등으로 구분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신에 대한 사랑과 기사도적 사랑이 중요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낭만적 사랑'의 개념은 놀랍게도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것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형성된 이 새로운 사랑의 관념은 개인의 감정과 선택을 중시하는 근대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플라톤 사랑은 순수하고 강한 형태의 비성적(非性的)인 사랑을 말한다

이러한 사랑의 발명 과정을 잘 보여주는 두 영화, "위험한 관계"와 "스캔들"을 통해 우리는 근대적 사랑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1988년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위험한 관계"는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시대는 결혼이 주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졌던 때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을 일종의 게임으로 취급하며, 감정보다는 전략과 술수를 중시합니다. 주인공 발몽과 메르테이유는 사랑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는 데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발몽이 진정한 사랑에 빠지면서 영화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위험한 관계(1988)_포스터

한편, 2003년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은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각색한 작품으로,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사랑의 개념을 재해석합니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사랑은 더욱 금기시되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이는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의 사랑관을 잘 보여줍니다.

스캔들-남녀상열지사(2003)_포스터

두 영화는 모두 사랑이 단순한 본능이나 감정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18-19세기는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시기로, 이는 근대적 개인 개념의 탄생과 맞물립니다. '낭만적 사랑'의 발명은 결혼의 의미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 경제적, 정치적 계약에 가까웠던 결혼은 점차 개인의 선택과 감정에 기반한 결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위험한 관계'나 '스캔들' 속 인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이해하고 경험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기대와 개인의 욕망 사이의 갈등은 존재합니다. 이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관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미래의 관계 형태를 상상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랑의 형태와 표현 방식이 사실은 특정 시대와 문화의 산물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사랑은 끊임없이 재발명되는 개념이며, 우리 각자가 그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랑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온라인 데이팅이 보편화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하며, 개인의 자아실현이 더욱 중요해지는 등 사랑을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재정의하고 있을까요? 결혼이나 출산과 분리된 사랑, 또는 로맨틱한 감정 없이도 가능한 파트너십 등 새로운 형태의 관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대 사회에서 사랑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앞으로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갈까요? 우리 모두가 사랑의 '재발명'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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