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뒤에 숨겨진 오싹한 창작의 비밀
누구나 한 번쯤 무서운 악몽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흘린 경험이 있을 겁니다. 끔찍했던 꿈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는 대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악몽이 눈을 뜨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계속 떠돌아 다닌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악몽을 글로 옮겼는데, 그 이야기가 너무도 사악하고 끔찍하여 자신조차 그것을 견딜 수 없게 된다면 말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바로 그런 악몽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탄생 비화는 작품 그 자체만큼이나 흥미롭고 동시에 섬뜩합니다. 스티븐슨은 어느 날 밤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꿈을 꾸고 난 뒤, 마치 꿈에 홀린 듯이 단 3일 만에 무려 114페이지나 되는 소설 원고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의 펜은 거의 멈추지 않았고, 마치 자신을 지배하는 어떤 힘에 이끌린 듯 정신없이 글을 써 나갔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초고를 처음으로 읽어본 그의 아내는 강한 충격을 받고 맙니다. 그녀는 원고가 지나치게 어둡고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내의 말에 흔들린 작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으로 그 원고를 불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단 하나의 복사본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 어렵게 써 내려간 원고를 불태운다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소설의 내용이 그의 아내뿐 아니라 그 자신마저 깊이 두려워할 정도로 어두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기묘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초고를 불태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븐슨은 자신 안에서 다시 그 이야기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한 느낌으로 말이죠. 그는 결국 다시 펜을 들었고, 이번에도 불과 며칠 만에 완성된 소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입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 내면의 어둠과 욕망이라는 불길한 주제를 더욱 생생하게 묘사하고 말았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이중인격이라는 소재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내면에 감추고 있는 어두운 욕망과 광기, 악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어둠과 마주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불편하고 섬뜩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스티븐슨이 원고를 불태웠음에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공포가 그를 압도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향한 강렬한 경고이자, 작가조차 두려워한 악몽의 기록으로 오늘날까지 우리를 매혹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