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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을 더 잘하나요?

황희 정승과 농부가 알려주는 말의 배려와 존중

by 김형범

사람 사이의 갈등은 늘 ‘크고 작은 것’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누가 더 많이 했느냐, 누가 더 잘했느냐, 누구의 노력이 더 컸느냐.
그 기준은 상대적이고 때로는 무의미하지만, 정작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절박한 문제입니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에게는 오늘날에도 깊이 새겨볼 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걷다가 밭을 가는 농부와 두 마리의 소를 보게 됩니다.
흰소와 검은소가 나란히 쟁기를 끌며 땀을 흘리고 있었지요.

황희는 밭 너머로 농부에게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흰소와 검은소 중에, 누가 일을 더 잘하오?”

농부는 그 소리를 듣고 쟁기를 멈춘 뒤, 황희 쪽으로 다가와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합니다. “검은소가 일을 조금 더 잘합니다요.”
그 말을 들은 황희는 이상해서 묻습니다. “아니, 그걸 그냥 말해도 될 텐데, 왜 내게 다가와서 속삭이오?”
그러자 농부는 진지한 얼굴로 조용히 답합니다.
“아무리 짐승이라 해도,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하지 않겠습니까.”


이 짧은 이야기에는 오래 곱씹을 만한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농부는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존재로 짐승을 바라봤습니다.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를 떠나서, 누군가를 비교하고 그 결과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생겨날 수 있는 상처와 부끄러움을 스스로 경계한 것입니다.

황희 정승은 단순히 그 상황을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농부에게서 큰 배움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황희는, 백성을 다스리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다치는 일이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걸 그 순간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비교와 판단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스스로도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닿을 수도 있는 칼날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생각해 한 발짝 다가가 속삭이는 것,
그 조심스러운 태도는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 존중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사람은 비단 짐승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말이 들리는 곳까지 생각이 미쳐야 진짜 대화가 됩니다.
들리지 않을 말을 조심하는 마음, 그 속에야말로 사람됨의 깊이가 담겨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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