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껍질이 가죽이 된다는 말

버려지는 껍질에서 시작된 작은 발명

by 김형범

주방에서 사과를 깎고 난 뒤, 도마 위에 소복이 쌓인 사과 껍질을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은 어쩌면 너무도 익숙한 일입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껍질들은 결국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생각의 가지가 자라기 시작한 건. 집에서 먹는 사과뿐 아니라, 주스를 만드는 공장이나 사과를 대량으로 가공하는 업체에서는 얼마나 많은 껍질이 매일같이 버려질까를 상상하게 되었고, 실제로 찾아본 자료에는 대부분의 공장에서 껍질은 별도의 활용 없이 폐기된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사실 하나가 어떤 사람에겐 낭비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겠지요. ‘이 껍질을 다시 쓸 방법은 없을까?’


어느 날, 그는 껍질을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건조된 사과 껍질은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되었고, 그 위에 천연 섬유와 유연제를 섞었습니다. 손으로 반죽을 하고 눌러 펴고 또 말리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마치 가죽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시트가 탄생했습니다. 그건 실험이었지만, 동시에 발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결과물을 가방과 지갑, 신발의 형태로 만들어 SNS에 올렸습니다. ‘이게 사과 껍질로 만든 거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비건 패션을 지향하는 브랜드들에서 협업 제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의심하던 사람들조차, 제품을 만지고 확인해본 뒤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사과 껍질로 만든 가죽은 기존의 동물성 가죽보다 훨씬 가볍고, 냄새도 적으며,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는 윤리적 측면 외에도, 원재료가 버려지는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환경적인 의미도 큽니다.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닙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애플레더'라는 이름으로 사과 부산물로 만든 가죽이 상용화되어 있고, 일부 국내 브랜드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시작이 거창한 연구소가 아니라, 주방에서 버려지던 껍질 한 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게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사과 껍질 가죽은 단지 패션 소재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낭비를 줄이고, 순환을 고민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요.


사과 껍질이 가죽이 되었다는 이 놀라운 이야기는, 단순한 재료의 전환이 아니라, 버려지는 것들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분명,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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