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말하느냐, 끝까지 남느냐

조선과 일본, 충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by 김형범

“만약 주군의 뜻이 틀렸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을 일본 사람에게 던졌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그럴 땐 다른 주군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한동안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국에서는 신하가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것이 충신의 표본처럼 여겨지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 자세가 ‘충신’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이 둘의 인식 차이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각 나라가 가진 역사적 경험과 세계관, 권력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깊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나라였습니다. 이 사상은 임금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신하의 올바른 직언을 도덕적 책무로 여겼습니다. 신하는 충성을 다하되, 잘못된 길로 가려는 군주에게는 목숨을 걸고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역사에서 충신은 종종 왕에게 직언하다가 유배되거나 죽임을 당한 인물로 등장하곤 합니다. 그들은 임금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근본 이념에 따라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와 달리 일본의 전국 시대는 완전히 다른 정치 질서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각 지방 영주들이 다이묘라는 이름으로 자율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사무라이들은 그 다이묘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살아갔습니다. 이 세계에서 주군이 틀렸다는 판단은 충신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주군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를 떠나 다른 주군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었고, 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한 주군의 곁을 지킨 사람에게 더 큰 찬사가 주어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예가 바로 아코우 낭사들입니다. 주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1년 넘는 시간을 견디고 결국 주군의 원수를 갚은 뒤 자결한 그들은 일본에서 ‘진정한 충신’의 대명사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에서는 충신이란, 왕을 바르게 이끄는 자이며, 왕에게 진심으로 간언하는 이였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충신이란, 주군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끝까지 곁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는 이였습니다. 그 차이는 결국 정치 체제의 차이, 즉 왕조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와 다이묘 중심의 봉건 분권 체제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조선은 단 하나의 임금만이 존재하고, 그 임금을 향한 충성은 도덕적 이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다수의 영주가 병립하는 시대였기에, 충성의 무게는 도덕보다는 개인적 의리나 선택의 문제로 다뤄졌습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충성의 본질이 진심과 옳음에 가깝고, 일본에서는 끝까지 한 사람을 지키는 결속에 가까운 개념이 된 것입니다.


이 두 나라의 충신 개념 차이는 창작물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극에는 왕에게 목숨 걸고 직언하는 신하들이 자주 등장하고, 일본의 시대극에는 주군의 복수를 위해 싸우는 사무라이가 자주 그려집니다. 결국 충신은 시대와 체제,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이상적인 인물이자, 그 사회가 바라는 ‘좋은 인간’의 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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