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과 가능성의 세계
사실과 거짓 사이에는 아주 얇은 경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가능성’이라는 회색 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그렇다고 허무맹랑하지도 않은 어떤 이야기. 그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것을 진짜처럼 믿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쌓이면, 결국은 진짜처럼 작동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른바 ‘빌게이츠 사위’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느 날 스스로를 유력 컨설팅 회사의 중역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어 말하죠. “나는 곧 빌 게이츠의 딸과 결혼할 예정입니다.” 이 말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고, 확정된 사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그럴듯했습니다. 회사 측에서는 그가 ‘빌 게이츠의 예비 사위’라는 말에 신뢰를 보냈고, 그에게 중요한 자리와 기회를 안겨줍니다. 반대로 상대 측에게는 ‘글로벌 기업의 중역’이라는 타이틀로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 어떤 확정된 사실보다, ‘가능성’이 작동한 순간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남자가 두 세계 사이에서 사실처럼 보이는 가능성만으로 신뢰를 교환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은 실체 없는 미래의 약속, 그리고 모호한 경력 타이틀이었지만, 이 둘이 교차하면서 서로를 뒷받침해주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지 못한 채, 모두가 그를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이라기보다는 그럴 듯함이 신뢰를 대신했고, 그 신뢰가 다시 현실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 쓸 수 있는 영리한 심리 전략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뢰 시스템이 얼마나 불완전한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직접 확인한 사실보다, ‘그럴 법한 이미지’에 더 쉽게 마음을 열고, 판단을 내립니다. 실제보다 더 그럴듯한 정보가 우선되는 이 시대에, 거짓과 진실은 종종 혼동되기 마련입니다.
이 구조는 소셜미디어와 브랜딩 문화에서도 반복됩니다. 협업하지 않은 브랜드를 태그하거나, 일시적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를 마치 고용된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들. 이 또한 ‘완전한 거짓’은 아니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이 중간지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신뢰를 빼앗긴다는 사실입니다.
‘빌게이츠 사위 되기’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소비되기엔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가능한 이야기에 반응합니다. 그 가능성이 매끄럽게 설계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왜 믿게 되는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허세를 넘어선 사회적 구조의 민낯을 보게 됩니다. 결국 신뢰는 진실에만 기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 설계된 가능성이 신뢰를 유도하고, 그 신뢰가 다시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진실과 가능성 사이 어딘가에서,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