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조선에서 외국인이 겪은 화폐 문화 충돌
어느 날, 아주 먼 나라에서 온 한 남자가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그는 여행자이자 탐험가, 그리고 조금은 고집스러운 외국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던.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미국에서 150달러라는 당시 기준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조선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는 상상조차 못 했겠지요.
당시 미국에서 유통되던 동전은 은화였고, 그것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화폐였습니다. 반면 조선의 엽전은 대부분 구리나 잡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액면가에 비해 실질적인 가치는 훨씬 낮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환율이 엄청났습니다. 미국 돈 1센트에 조선 엽전이 15개에서 많게는 30개씩 쏟아져 나왔습니다. 결국 로버트가 150달러를 환전했을 때 그는 수십만 개의 엽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무게와 부피는 상상 이상이었고, 돈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하나의 노동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짐짝만 한 돈’이었던 겁니다.
놀랍게도, 조선 사람들은 로버트가 가져온 은화를 무척 반겼습니다. 그에게는 단순한 여행 자금이었지만, 조선에서는 은 그 자체가 귀했고, 실제로 시장이나 주막에서는 미국 동전을 받기 위해 앞다투어 손을 내밀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 환대를 받은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여행에는 이동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렇게 무거운 엽전을 가지고 다니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때 통역관이 조선 특유의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돈을 주막이나 상점에 맡기고 일종의 보관증이나 어음을 받아 사용하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같은 개념이지요. 이미 조선에서는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이러한 간편한 상거래 방식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는 이를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돈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이 불안했던 그는 끝내 모든 엽전을 직접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덕분에 그는 여행 내내 짐꾼을 고용해야 했고, 이동하는 데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무게와 번거로움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판단을 끝까지 고수했습니다.
그의 여정은 당시 조선의 화폐 가치와 문화, 그리고 외국인의 시선을 함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 산처럼 쌓인 엽전 앞에 선 로버트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깁니다. 현대의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 장면은 조선 후기의 경제적 구조, 물질의 가치에 대한 인식, 그리고 신뢰와 교환 시스템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외국인의 일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겪은 놀라움과 불편함, 그리고 조선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은 당시 조선이 가진 독특한 경제 문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이 됩니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조선이 외국 화폐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떻게 자신의 방식으로 상거래를 운영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던이 택한 선택은 어쩌면 고집스러웠을지 몰라도, 그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 조선을 더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