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조선 초상화의 리얼리즘

진짜를 그린 조선의 화가들

by 김형범

우리가 전통 회화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선이 부드럽고 분위기 있는 산수화나 사군자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조선의 초상화를 보면 그런 고정관념이 통째로 깨진다. 전근대 시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권력자의 위엄을 강조하기 위해 초상화를 미화했다. 왕이든 귀족이든, 그림 속의 얼굴은 실제보다 젊고 당당하며 단정하게 묘사되곤 했다. 권력은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시각이 반영된 셈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조선의 초상화는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였다. ‘털 한 올만 달라도 그 사람 아니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조선의 화가들은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했다. 초상화를 의례용 그림이나 장식으로 여긴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과 삶, 존재 자체를 담는 기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만 봐도 느껴진다. 그의 이마에는 크고 도드라진 사마귀가 하나 있는데, 화가는 그것을 결코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사시였던 최제우의 눈도 교정 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졌으며, 나이가 들어 머리숱이 듬성듬성해진 윤증의 모습도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이쯤 되면 미화는커녕 병력까지 증언하는 의학적 자료 수준이다.


잔털이 많은 얼굴, 피지 분비가 많은 피부로 생긴 여드름 자국, 휘어진 코, 드문드문 난 수염까지... 현대의 피부 보정 앱에서는 싹 다 지워질 특징들이지만, 조선의 화가들은 결코 붓끝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그려야 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곧 진실이자 예술이라고 믿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며 서양의 화풍, 특히 사실주의가 유입되면서 조선의 초상화는 더 극단적인 사실주의로 나아간다. 이 시기의 초상화는 사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밀하고 생생하다. 어떤 인물은 사시의 정도까지 정교하게 표현돼 있고, 주름, 검버섯, 피부의 질감까지 살아 숨 쉬듯 그려졌다. 고종 황제의 어진 역시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이렇게까지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는 대상을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태도, 사람의 얼굴에 담긴 생을 존중하려는 의식이 있었다. 조선의 초상화는 단지 ‘닮게’ 그린 것이 아니라, ‘진실하게’ 그린 그림이다.


오늘날 우리는 필터와 보정으로 현실을 조금씩 바꾸며 살아간다. 하지만 조선의 화가들은 오히려 현실을 더욱 정밀하게 붙들려 했다. 때로는 눈을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그림들이지만, 그 속엔 인물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진짜 실력자는 결국, 진짜를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짐짝만 한 돈을 들고 다닌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