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의 무례로 세상을 가르치는 법
도시에 한 남자가 있었다.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시장 한복판을 헤매며 “사람을 찾고 있다네”라고 중얼거리는 괴짜. 해가 쨍쨍한데 불을 밝히니, 지나가던 이들이 비웃습니다.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눈앞에 잔뜩 보이는 건 사람 모양의 그림자일 뿐, 진짜 사람을 찾고 있지.” 이 짧은 장면에 디오게네스가 왜 ‘미친 소크라테스’라 불렸는지가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질문하지 않고 체험하게 했고,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무례하게요.
디오게네스의 출발은 영웅담과 거리가 멉니다. 시노페의 환전상 집안에서 태어나 화폐를 둘러싼 사건으로 추방자가 되었고, 아테네에 와서는 스승 안티스테네스를 찾아가 제자를 받아달라며 버텼죠. “때리시려면 머리를요. 나를 내쫓을 만큼 단단한 지팡이를 찾기 전엔 못 쫓아내실 겁니다.” 스승의 지팡이를 향해 머리를 내미는 이 무모함은, 이후 그의 전 생애를 지배한 방식이 됩니다. 남들이 말로 철학을 세울 때, 그는 몸으로 철학을 밀어붙였습니다.
그가 택한 삶은 ‘개 같은 삶’이었습니다. 개가 품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본성대로 사는 방식을 본뜬다는 뜻이었죠. 그는 두 겹의 외투 하나로 잠자리와 식탁을 겸했고, 집 대신 큰 항아리를 거처로 삼았습니다. 표주박 하나마저도 개가 혀로 물을 핥는 모습을 보고 “이쯤이야 없어도 된다”며 던져 버렸습니다. 누구는 이걸 가난의 미학이라 부르겠지만, 그에게는 아예 ‘소유하지 않음’이 철학의 핵심이었습니다. 필요를 최소화하면 권력과 관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무례는 타인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습관화된 거짓을 벗기기 위한 연극이었습니다. 플라톤이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동물”이라 정의하자, 그는 털 뽑힌 닭을 들고 와 “여기 플라톤이 말한 인간이오”라고 외쳤습니다. 정의는 우아했지만 삶의 감각에는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한 줌의 깃털로 무너뜨린 셈이죠. 어떤 철학자가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그는 말 대신 몸을 썼습니다. 폴짝폴짝 뛰어 그 사람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보이죠? 내 발이 논증입니다.”라며 끝냈습니다. 논리 대신 실천, 개념 대신 몸짓. 그의 방식은 늘 이랬습니다.
권력 앞에서도 그는 에티켓을 몰랐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무엇이든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그저 “빛을 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왕의 은혜를 사양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아무리 커도 인간에게 필요한 건 햇빛 같은 단순한 것임을 상기시킨 거죠. “그가 나쁘냐 좋으냐”는 되묻는 질문도 명료합니다. “좋은 것”이라 답하자 “그렇다면 왜 두려워하겠소?”라니. 두려움조차 권력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을, 말 3줄로 끝낸 셈입니다.
그는 예의를 어기며 진실을 밀어붙이는 데에 주저가 없었습니다. 한 부자가 “제 집은 깨끗하니 침은 뱉지 말라”고 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합니다. “가장 더러운 곳을 찾다 보니.” 노골적이고, 불편하고,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드러나는 건 집의 청결이 아니라, 체면으로 덮인 위선입니다. 어떤 연회에서 사람들이 그를 개 취급하며 뼈다귀를 던지자, 그는 돌아갈 때 개가 하듯 오줌으로 답했습니다. 모욕의 언어를 모욕의 방식으로 되돌려 보내는, 불쾌하지만 정확한 거울이었습니다.
그의 무례는 약자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기꺼이 낮추어 고정관념을 흔드는 데 쓰였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던 자리에서 “나는 사람들을 다스릴 줄 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주인을 찾아달라”고 말한 일화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분의 위아래를 전복하는 이 한 마디는, ‘주인-노예’라는 말의 순서를 머릿속에서 통째로 뒤집어 버립니다. 이후 그는 실제로 주인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스스로의 역할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또 국경과 출신을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디 사람이냐”는 질문에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의 자격은 도시나 혈통이 아닌 ‘살아 있음’ 그 자체였고, 만물은 서로의 일부를 나누며 살아간다고 여겼습니다. 빵 속에 살이 있고, 야채 속에 빵의 입자가 스며 있다는 그의 비유는, 오늘 말로 바꾸면 생태적 순환과 연결성의 직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옳은 나라’란 특정 도시국가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속한 세계 전체였습니다. 2,500년 전의 이 한 문장이 오늘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미리 예고합니다.
물론 그의 삶은 보기에도 불편했습니다. 대중 앞에서도 숨기지 않는 본능의 처리, 체면을 무너뜨리는 행동들, 집이 아니라 항아리에서의 숙식. 우리는 이런 장면 앞에서 자동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예의가 없고, 비문명적이며, 비생산적이다’라고. 그런데 디오게네스의 질문은 여기에 꽂혀 있습니다. “정말 그 예의와 문명과 생산성이 너를 행복하게 했는가?” 그는 욕망을 다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당연히 그런 게 좋아’라고 여기는 관습들을 한 번쯤 들춰 보라고, 자신의 삶을 희화화의 무대에 올렸습니다. 어떤 날 그는 일부러 조각상에게 ‘뭘 좀 달라’고 구걸하며 거절당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남의 시선과 체면에 길들여진 자율신경을, 체계적으로 둔감하게 만드는 훈련이었을 겁니다.
그의 농담은 잔인할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매춘부의 아들이 행인들에게 돌을 던지자 “그러다 네 아버지 맞히겠다”고 했고, 시노페에서 추방형을 받자 “나는 너희에게 체류형을 내리노라”고 받아쳤습니다. 표면을 비틀어 핵심을 보여주는 ‘한 줄 반전’이 그의 전매특허였습니다. 그래서 평생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어도, 그의 사상은 일화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철학을 문장으로 쓰지 않고 장면으로 남긴 사람입니다. 한 컷의 카툰처럼, 이해 대신 직관을 건드리는 방식으로요.
마지막까지도 그는 소유와 체면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맹수에게 던져 달라.” 죽음조차 자연으로의 귀환이어야 한다는 그의 고집은, 맹세처럼 단호합니다. 무덤 위에 개 조각이 올려졌다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누가 자신에게 잘하면 꼬리를 흔들고,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짖어대며, 해를 끼치면 문다는 개의 단순한 윤리를, 그는 인간의 윤리로 끌어올렸습니다. 복잡한 도덕 대신 분명한 태도. 그 원시적 선명함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오래 남았습니다.
시오노 난미는 로마사를 이야기하며 “문명은 때로 방탄유리처럼 현실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썼습니다. 디오게네스의 무례는 그 방탄유리를 금 가게 하는 작은 망치였습니다. 대왕 앞에서 햇빛을 요구하고, 철학자 앞에서 닭을 흔들며, 부자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감히 진실이라 부르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불편하고, 그래서 생각합니다. 그가 원한 건 바로 그 불편함이었을 겁니다.
‘미친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은 반쯤은 비아냥이지만, 반쯤은 찬사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산파술로 대화를 통해 숨은 진리를 끌어냈다면, 디오게네스는 무대처럼 꾸민 일상에서 관습의 가면을 벗겼습니다. 하나는 대화의 철학, 다른 하나는 퍼포먼스의 철학. 둘 다 우리에게 같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남들이 본다”는 이유로 진실을 숨기지 않는 용기, “원래 그런 것”을 한 번쯤 뒤집어 보는 용기. 우리는 항아리에서 살 필요도, 대낮에 등불을 켤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눈부신 햇빛을 가리는 그늘이 무엇인지, 오늘 하루 한 번쯤 몸으로 확인해 볼 수는 있습니다. 디오게네스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요. “좋은 것을 왜 두려워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