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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에 담긴 삶의 방식

문 안팎의 비밀

by 김형범

경찰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보통 경찰이 잠긴 문을 전문 장비로 열고 들어가지만, 서양 영화에서는 과감하게 발로 문을 차서 여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과연 서양의 문은 왜 이렇게 쉽게 열리는 걸까요? 이 작은 차이가 바로 문이 열리는 방향, 즉 안으로 열리는 문과 밖으로 열리는 문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리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와 생활 양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대부분의 서양 가정집 현관문은 안쪽으로 열리는 인도어 방식입니다. 이는 단순히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바로 보안입니다. 안으로 열리는 문은 경첩이 집 내부에 달려 있어 외부에서 쉽게 떼어낼 수 없습니다. 또한, 문이 안으로 열리기 때문에 외부에서 강제로 열려고 해도 문틀이 지지대 역할을 해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문 뒤에 무거운 가구나 물건을 놓아 강력한 바리케이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기후 때문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문이 밖으로 열리면 쌓인 눈에 막혀 문을 열 수 없게 됩니다. 자칫하면 집 안에 갇히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는 안으로 여는 문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문이 안으로 열리는 방식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고, 혹독한 자연환경에 대비하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의 현관문은 대부분 밖으로 열리는 아웃도어 방식입니다. 문이 밖으로 열리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공동 생활의 안전입니다. 한국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처럼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 주택 형태가 발달했습니다. 화재나 지진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이 안으로 열리면 좁은 복도에서 대피하려는 사람들과 엉켜 혼란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문이 밖으로 열리면 복도 방향으로 바로 문을 열고 나와 빠르게 대피할 수 있어 긴급 상황에서 유리합니다. 둘째는 바로 신발 문화입니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갑니다. 만약 현관문이 안으로 열린다면, 신발장과 신발로 가득 찬 좁은 현관 공간이 더욱 협소해져 문을 열고 닫기가 매우 불편해집니다. 문을 열기 위해 신발을 한쪽으로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생기죠. 밖으로 열리는 문 덕분에 우리는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 공간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이 열리는 방향은 단순히 건축 양식의 차이가 아닙니다. 서양의 현관문은 혹독한 자연과 외부의 위협에 맞서 가족의 안전을 지키려는 개인주의적이고 방어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반면 한국의 현관문은 공동체 안에서의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 타인과의 조화, 그리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는 집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문 하나에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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