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 보존된 이유
혹시 일본의 세계기록유산 중에 고려가 만든 인쇄본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난 2025년 4월, 일본 교토의 조도지가 소장하고 있던 고려대장경 인쇄본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가 그 가치를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 경전의 목판을 집대성하여 유일하게 보존한 팔만대장경을 모두가 탐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처럼 모두가 탐냈던 지혜가 왜 우리 땅에 온전하게 남았는지, 그 기적 같은 이야기가 바로 여기, 우리 역사 속에 살아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불교의 방대한 경전과 지식을 담은 목판 총서입니다. '8만'이라는 이름은 실제 숫자를 의미하기보다 불교에서 '무한히 많은 가르침'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 위대한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에조차 현존하는 완벽한 판본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려는 물론이고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팔만대장경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만 80여 차례나 관련 기록이 등장할 만큼, 그들의 집착은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단식 투쟁이나 약탈을 시도할 정도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했죠. 그들에게 팔만대장경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을 넘어,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보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의 가장 큰 위기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격랑 속에서 찾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이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을 가져가려 하자, 당시 스님들은 "차라리 불태워라"라며 목숨을 걸고 저항했습니다. 이들의 강직한 신념 덕분에 일본도 결국 약탈이 아닌 연구의 대상으로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발생했습니다. 해인사 인근에 공산군이 숨어들었다는 이유로 국군이 폭격을 명령한 것입니다. 모두가 팔만대장경의 소멸을 예상했지만, 당시 폭격 조종사였던 김영환 장군이 명령을 거부하며 폭탄 투하를 멈췄습니다. 한 개인의 용기 있는 선택이 수천 년의 지혜를 지켜낸 것입니다.
이처럼 팔만대장경은 외세의 끊임없는 요구와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이면에는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굳은 의지와 용기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