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기묘한 풍경: 프루트 머신

by 김형범

1950년대는 냉전의 긴장이 전 세계를 짓누르던 시기였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아주 기묘한 프로젝트를 가동합니다. 바로 공직자들 사이에서 성소수자를 찾아내기 위한 '기계'를 제작한 것이죠.

이 기계의 작동 원리는 차라리 블랙코미디에 가깝습니다. 피험자에게 특정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주며 동공의 확장, 손떨림, 심박수의 변화를 측정하는 식이었습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을 단순히 '생체 반응'이라는 데이터로 치환해버린 이 유사과학적 접근은, 당시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엄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즉시 '게이'로 판별되었습니다."


이 판독 결과에 따라 실제로 50명의 공직자가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내 게시판에 명단이 공개되거나, '조용한 퇴사'를 강요받는 식이었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사생활 폭로지만, 놀랍게도 당시엔 그 누구도 이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아웃팅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침묵의 시대'

우리가 이 사건을 보며 느끼는 당혹감은 단순히 기술의 조잡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웃팅(Outing)'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무지함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정체성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드러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행위인지, 그 시절의 사회는 알지 못했습니다. 개인의 존엄보다는 집단의 '순결성'이나 '안보'가 우선시되었고, 기계가 뱉어내는 수치는 곧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영화 이론 중에 '장르의 생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장르가 탄생하고, 성숙하며,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변주하는 과정을 거치듯, 사회적 가치관 역시 진화의 과정을 겪습니다. 1950년대의 이 사건은 인권이라는 장르가 아직 '원시적 형태'에 머물러 있던 시절에 벌어진, 비극적인 해프닝이었던 셈입니다.


유사과학이 정의가 되었을 때의 비극

기술은 언제나 가치 중립적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시선에 편견이 서려 있을 때, 기술은 가장 효율적인 탄압의 도구가 됩니다.


측정의 오류: 신체 반응은 긴장이나 공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할 수 있음에도 이를 무시했습니다.

폭력적 결과: 사내 게시판 명단 공개는 한 개인의 사회적 삶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사회적 합의의 부재: 대중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기록은 당시의 집단적 맹목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기계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판별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형태만 바뀐 '현대판 프루트 머신'이 우리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특정 알고리즘이나 빅데이터라는 이름 뒤에 숨어, 누군가를 낙인찍고 배제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닐까요?


맺으며

1950년대 캐나다의 그 기계는 이제 박물관의 유물 혹은 역사의 흉터로 남았습니다. '아웃팅'이라는 개념이 확립되고 개인의 권리가 보호받는 지금, 우리는 비로소 그 시대를 '야만'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들도, 훗날 50년 뒤의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야만의 흔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술의 속도를 앞지르지 못할 때, 비극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그 기계 앞에서 동공이 떨렸을 누군가의 공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오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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