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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a GG Dec 26. 2021

반 칠십을 맞은 어느 날의 일기

그리고 이제 곧 반 팔십이 되겠지

| 내 나이가 어때서

이제 내 나이는 반 육십을 지나 반 칠십이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게 될 때가 머지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식으로 내 나이를 확인하게 되었다. 처음엔 농담으로 하던 말이었는데 가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것도 농담처럼) 내뱉던 '우리 이제 내일모레면 마흔인 거 실화냐!'가 정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다.  


'이제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날이 남아 있겠구나, 그 시간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겠구나'


나이를 먹어가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괜찮지 않은 무언가가 계속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것 같아 들여다보니 그것도 역시 나이를 먹어가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숫자가 의미하는 어떤 '때'에 했어야 할 것들을 하지 못 했거나 혹은 남들보다 늦었다는 뒤처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중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 결혼 생각은 없어? 

나이가 차고 30대 중반이 되니 자연스럽게 그러나 조금은 불편하게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결혼은 안 해? 만나는 사람은 있고?"  


(사회적 통념에 의한) 결혼 적령기에 나를 대입시켜 보면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그래도 조금 늦은 나이이고, 출산이란 걸 생각하면 노산에 접어들 나이가 되었다. 말 그대로 '이건 그저 사회적 통념에 의한 적령기일 뿐'이라고 위로해보지만, 가끔은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주변의 반응을 마주할 때가 있다. 요즘은 결혼이라는 주제가 상당히 민감하다는 걸 우리 할머니도 알고 계신 터라 예전처럼 타격감 있는 멘트를 날리시진 않지만, 올 추석에도 역시나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할머니: "너도 이제 나이가 많은데 생각이 정 없는 게 아니면 이제 적당한 사람 만나서 결혼해~"

나:(최대한 침착하게) "아 할머니....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러자 엄마가 바로 내 무릎을 한대 탁 치며 차단을 했다. "지가 알아서 할 텐데요 뭐~"


결혼은 선택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사실 이제는 가까운 친구들 중에서도 결혼을 한 친구들이 더 많아졌고, 그 안에서는 또 아이가 있냐 없냐로 갈린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대화에 흡수되지 못하고 겉도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혼은 좋아! 그리고 늦게 해도 상관없을 거 같아. 왜냐하면~"이라고 때와 상관없이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선택이 결혼이라며 결혼을 장려하는 친구와,

"야, 그냥 돈 벌어서 혼자 사는 게 최고야! 연애만 계속해도 되지 외롭지 않게"라며 결혼을 하고 진정한 비혼 주의자가 되었다 말하는 친구 사이에서 비혼 주의자도 그렇다고 행복 전사도 아닌 나는, 네 말고 맞고 네 말도 맞다로 응수한다. 결혼이 어렵다고 연애가 쉬운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라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어쩌면 스스로가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적 나이로  볼 때 결혼의 유무가 시사하는 바는 (아직까지는) 크다. 직장에서도 어쩌다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될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례 하는 말이

 "아, oo님 나이가 어떻게 됐죠?"

 "저 이제 서른 둘이에요"

 "아~그럼 할 때 됐네!"


그 '때'라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존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혹시 '노처녀'라는 단어가 여전히 사용된다면, 나의 이런 모든 견해는 '노처녀 히스테리'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실 요즘 가장 마음 한구석을 후벼 파는 것 중에 하나가 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한참 같이 놀고 즐기던 친구들은 이제 가정을 꾸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 연락은 자주 해도 만나기가 쉽지 않아 자연스럽게 약속도 만남도 줄었 때문이다.


쓰고 보니 나이라는 묵직한 통나무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휘청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알고 보면 보통의 그 누구보다도 바쁘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다.(라고 주변에서 더 많이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진짜 반 칠십을 맞았다. 35살. 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을 거지.  


| 생일 축하해!

"선물이 도착했어요! 이 oo 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아..! 초등학교 때 단짝이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결혼 한 뒤로는 못 만난 지 꽤 됐다. 반가운 마음 별일 없냐, 잘 지냈냐 등 안부를 묻다 보니 이 친구는 어느새 어린이가 되어가는 딸과 아장아장 걷는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게 7년 전이었다. 7년이 엊그제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7년 이라니.


그런데 사실 친구가 메시지를 보낸 날은 내 생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에게 이맘때인 거 알고 이렇게 먼저 연락 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친구: "야, 사실 이제 생일은 기억을 못 한다.. 카톡 알림에 뜨는 거 보고 알았어 ㅋㅋㅋㅋ"

나: "아니 그래도 알림을 보고 먼저 연락하는 게 어디야! ㅋㅋㅋ진짜 고맙다!"


뭐가 그리 바쁜지 주변도 잘 못 챙기고 지낸다는 내 말에 친구는, 본인도 그렇다며 재밌게 열심히 잘 살고 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라는 안부를 전하고 대화를 마쳤다.

짧았지만 잠시나마 손끝부터 심장까지 따뜻해지는 훈훈한 대화였다. 이런 무공해한 대화가 오간 것도 얼마만인지.


35살의 생일을 맞이한 지도 두 달이 지났고, 다음주면 한 살 더 먹고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일 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었나. 제주에서 서울로 다시 온지도 1년이 되었고, 새로 이직한 직장에서도 1년이 지났고, 다시 퇴사를 한다. 잦은 이동으로 끈기 없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도 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일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그리고 정말 아다 싶으면 빨리 탈출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 달 정도 백수생활이 예정되어 있다. 이제는 잠시 일을 쉬는 기간이 생겨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의 여유가 더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심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쉼과 또 쉼으로 가득 찬 한 달을 잘 보내고 본격적인 내년을 시작해야겠다.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중반의 삶이 시작된다. 잘 즐겨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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