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으로 향한 도덕적 분노는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적 문제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늘 상 해오던 진영 싸움을 넘어서서 그 동안 다양한 악재에도 유지 해오던 정권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무너지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직접 피해를 입은 세대인 20, 30대 세대에서는 이번 정권이 내세웠던 사회 도덕적 가치를 스스로 훼손 했다고 보고 있다. 지지율에 대한 철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이 해온 다양한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반대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나 대립의 형태는 진영 간 싸움으로 나타났고, 대 다수 사건에서 지지 기반이 이탈하는 현상은 없었다. 정책과 불거진 문제의 성격과 형태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오가는 상황이었으며 지금 사건처럼 정권 자체에 대한 비판과 비토로 이어지면서 탈 지지의 형태는 처음 발생한 것이다. 20,30세대 들의 탈 지지를 세대 갈등으로 만 바라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직접적 피해자인 20, 30세대의 분노가 가장 크기는 하지만 가정과 사회에서 그들과 연관된 50대와 60대 에서도 탈 지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괴멸해서 명분만 유지하고 있던 자유한국당은 사건의 최대 수혜자로 탈 지지자들 일부가 지지하기 시작 했으며, 이번을 기회로 얼마 남지 않은 총선과 이후의 정권을 잡기 위한 세력 집결의 기회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이번 사건이 현 정권에 새로운 변곡점이 되는 이유는, 정권의 탄생 과정에서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고 약속했던 인재 기용과 관련한 도덕성의 기준을 위반했고, 위반의 당사자와 정부는 제기 되는 의혹과 혐의에 대해서 명확하며 깨끗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초기 국민들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정부 스스로가 제안하고 약속했던 인재 기용 기준은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수준의 것이었다. 정권과 정부 소속의 정치인이나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도덕 위반 이었고, 그들이 과거 정부 정치인이나 정권에 대해 비판과 비난의 중심이 되었던 내용들이었다. 이번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정부를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한 도덕적 기준을 제시 했으며, 제시한 기준에는 정부의 구성 요원들의 명확한 운영 철학이 담겨 있다. 과거의 정권과 비교하여 정권의 청렴성과 도덕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기준들이다. 그리고 정부가 지향하는 사회의 목표 또한 국민들이 원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국민들은 과거 정권의 부정과 부패로부터 요구하게 된 사회의 기준은 "기회의 균등(평등), 과정의 공정(특혜 배척과 제도적 장치를 통한 과정), 결과의 정의(기회와 과정이 올바르면 당연히 결과는 정의로움)"를 내세우고 있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모든 정책과 시스템은 "기회는 평등했으며, 과정은 공정했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현 정부와 정권은 짧은 이 세 마디 문장으로 국민들이 과거 정권으로 부터 가지게 된 불만과 실망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었다. 명확하고 간결한 정부의 목표는 국민들 대 다수의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었으며 정부 정책의 방향성과 내용에 대한 의미 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와 호응은 현 정부가 사회 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와 목표를, 정부 조직 내부의 오래된 악습과 쌓여있는 폐단을 청산하기 위한 적폐청산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명분과 힘을 주었다. 과거 정부의 조직에서 시행 되었던 악습과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과거 정권을 부패 정권 그리고 국정농단 정권으로 규정 지었다. 각 행정 부처 장관이나 책임자의 위치에는 새로운 현 정권의 인사들이 취임했으며, 조직의 수장이 된 현 정권의 인사들은 조직에 대한 악습과 적폐의 폐단을 찾아내고 청산과 수정하기 위해 전수 조사를 진행하였다. 적폐 청산은 현 정권과 정부 조직들의 정책과 행동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나타내 주었다. 국민들은 현 정권의 적폐청산 정책에 대해서 높은 지지와 응원을 보냈으며, 정부의 정권과 인사들에 대한 평가는 과거 정부의 인물들 보다 높은 도덕적 인성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재로 평가 하였다. 적폐청산 정책은 정권 초기 국민들의 요구와 새로운 정권의 도덕적 우월성과 국민들에 대한 공감에서 이루어졌다. 적폐 청산은 현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과거 정부와는 단절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기도 하다.
과거 정부와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을 통해 도덕적 우의를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던 현 정권과 인사들은, 그 동안 과거 정부 정권 인사들의 폐단과 실정에 의해서 가려져 있던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처의 장관 후보자나 또는 장관급에 준하는 부처나 공공 조직의 책임자로 부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경우라도 정부 조직의 중요한 위치로 임명되는 경우는 언론과 야당 정치인들에 의해 많은 의혹과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현 정부가 초기에 국민에게 약속한 정부 조직에 대한 인사 기준의 도덕적 잣대는, 과거 정부가 정부 조직의 인사들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도덕적 문제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기준이었다. 국민들은 국정농단 과 부패 정권의 몰락하는 과정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언행이 사회의 공정성을 우선시하는 높은 도덕적 인성을 갖춘 인재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진보주의자는 기득권 세력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특혜에 대해서 비판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그들이 외치던 목소리는 사회 약자를 위한 정책의 개선과 제도의 변화에 대한 주장이었고, 모순된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을 통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서 다양한 대안 및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들 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기득권 계층이지만 진보적 생각과 시각을 가진 그들이 자신들 계층에 대해 비판을 하고, 기득권 층 스스로가 반성하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높은 수준의 도덕을 가진 훌륭한 인성을 소유한 정치인으로 생각을 했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팬덤과 같은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정부 및 지지 정치인들이 도덕적 흠결로 비판과 비난을 받더라도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비호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청문회나 정치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작은 흠결과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눈봉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었으며, 비판을 하는 세력을 향해서 조직적으로 대항하였다. 현 정부와 정권의 세력들에 대한 지지자들은 "평등, 공정. 정의"를 사회에서 실현 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그들의 도덕성은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민들의 열망인 "평등, 공정, 정의" 의 사회 실현을 위한 실현 방법과 내용은, 사회 내부의 정부 및 민간 조직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과 기회에 대한 "접근, 절차, 선택" 의 조건과 결정 기준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 내부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혜택과 기회에 대한 접근 권한은 계층과 출신 및 과거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제공" 되어야 하며, 제공된 혜택과 다양한 기회를 가지기 위해 만들어진 절차와 시스템은 "적용 및 과정이 공정" 해야 하고, 제공된 혜택과 기회에 대한 최종 선택은 부정한 개입과 영향이 없는 "정의로운 결과를" 가져야 한다." 는 것이다.
< 필자는 보수적인 색깔을 몸에 두르고 있기 때문에 진보 진영 내부의 대 다수가 진보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 계층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단지 내 입장에서 느끼는 진보 진영의 지도 계층과 리더들의 모습을 통해서 유추해볼 뿐이다. 진보 진영의 정치인과 지도 계층에 대해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방송이나 여러 상황에서 보여준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념의 형태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기준과 단편적인 행동 등을 통해서 판단 할 뿐이다. 과거 부패 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진보 정치인들의 역할과 비판의 내용은 기존 부패 세력과는 다른 색깔과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재단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덕적 기준이 높으며 호혜와 상호 배려에 대한 정신이 엿보이는 세력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기득권 계층이 가지는 특혜와 권리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 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고 처절한 배신감을 가지게 만드는 부분은 상대에 따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잘못을 저지른 상대가 누구 인지에 따라 느끼는 감정에는 작은 차이를 보이지만, 저지른 잘못의 종류와 내용에 따라 나타내는 분노는 동일하다. 박근혜 정권의 탄핵은 국정 농단의 결과 이지만, 국민들 분노의 시작과 기름을 부은 것은 부정한 방법을 이화여대를 들어간 경위와 과정이었다. 국민들은 교육은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마지막 성역이며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최후의 영역인 것이다. 교육은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계층의 이동이 가능한 수단의 하나로 공정하며 평등한 기회가 제공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영역이다. 대한민국 사교육비의 비용은 일반 중산층에도 부담이 될 정도이다. 그럼에도 과도한 비용이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막지는 못한다. 가능한 자녀의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끼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부모들의 생각이며 교육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것을 항상 마음 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교육 분야는 아직 까지 가장 공정성을 가진 게임 판이고 노력과 개인의 실력이 결정짓는 장소여야 한다.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발달한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이 태생의 한계를 넘어 부를 축적하고 상류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 하다. 부는 세습을 매개로 대물림 되며 자본주의 사회는 부의 대물림에 의해 계급의 고착이 이루어진다. 단단한 계급 고착이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도 교육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직업의 선택이 가능하다. 교육 제도를 통해 명문 대학이나 학교의 진학은 어려운 자신의 환경을 바꿔줄 하나의 기회로서 작용한다. 학벌은 태생으로 부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이 된다. 명문 대학과 이름 있는 학교의 간판은 상류 계급의 사람들과 학벌을 통한 연대와 그들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준다. 교육이 본래 목적인 개인의 역량 개발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지식 탐구와 세상의 이치에 대한 연구는 일부 지식층과 특별한 선구자의 영역일 뿐이다. 대 다수의 국민에게 교육 제도는 계급 이동을 위한 시스템이며 실제 개인의 역량과 자질에 따라 진학할 수 있는 학교와 수준이 정해진다.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많은 시스템 중 외부의 영향이나 힘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 영역이다. 국민들 대 다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직 교육은 우리 미래 사회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 해 줄 영역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얼마전 국정 농단의 시작이 이화여대 입시 비리에서 시작되어 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어려운 선택을 만들어 냈다. 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과 믿음은 사회 어떤 분야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얼마 전의 기억이 지금 벌어지는 조국 후보의 문제에서 국민들은 더 큰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과거의 탄핵의 단초가 되었던 분야였던 만큼 그리고 그들을 비판하고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과 조직이었던 만큼 오히려 비교할 수 없는 실망과 분노가 쌓이게 된 것이다. 힘이 없어서 주어진 기회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참함과 열어진 문조차 넘지 못하는 현실은 절망을 넘어서고 말았다.
불과 얼마 되지 않는 대한민국의 과거 중 하나는, 자라나는 우리 어린 학생들을 하나의 절대 평가 속에서 공부 만을 강요하는 사회가 너무 잘못됐다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 기득권 층들이 누리는 특별한 혜택과 소수의 자본 계급과 엘리트 계층의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한 방법으로 활용되는 수시 입시 제도는, 대학을 하나의 평가 기준에 의해 뽑는 단일화 된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만들어 진 제도이다. 필자는 과거의 유물인 학력 고사 세대이다. 현재 입시 제도처럼 수시 입시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대학 입학을 했다. 단 한번의 시험을 거쳐 합격 여부가 결정되어졌던 과거 세대이며, 당시는 대학 입학의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전기 대 와 후기 대 2~3년 제의 전문 대학 입시가 따로 존재했었다. 해방 이후 대학 입학 제도의 변천과 특징을 인류의 통치 제도에 비유해 말한다면. 수시 입학 제도(무 시험 대학 전형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대학 입학 제도는 중앙 집권 방식의 제왕 적 제도인가, 아니면 지방 귀족이 통치의 중심이던 봉건 제도 방식의 지방자치 제도 인가의 차이로 보면 된다. 변천의 중간 과정에서 두 가지의 장점과 단점을 교배 시킨 변종 형인 혼합 형의 입학 제도가 존재하기 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방식의 대입 제도의 한계와 단점은 동일하고 명확하게 나타났다. 대학 입학의 기준이 학교의 성격이나 선택한 전공과는 관계없이 일괄 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학력 고사 및 본 고사는 획일 화 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학력 고사 제도는 전국 대학의 입학 시험을 하나의 통일된 문제와 시험 방식을 적용하였다. 고등학교 때 나눈 자연 계열과 인문 계열의 선택을 통해 점수의 배분과 계열에 따른 문제의 난이도와 각 선택 분야 별 점수 배분과 일부 선택 과목에 대한 편차만 적용했을 뿐, 시험의 결과에 따라 지원하는 학교와 학과에 성적 순 입학 여부가 결정나는 제도였으며, 본 고사 제도는 구분의 기준은 전국 학력 고사 세대와 동일 했으며 차이점은 자신이 지원한 학교에 가서 그 학교가 제시한 시험을 본 후 성적 순으로 입학 여부가 결정나는 제도였다. 당시의 대입 수험생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전기 후기로 나누어 진 대학 제도와 지원 학과를 3개 과까지 가능했고, 4년 제 대학이 힘들 경우 전문 대학을 통한 진학이 가능한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대학 입학 지원 시 계열 지원이 아닌 해당 학과에 직접 지원 하는 제도였다. 지금의 대학처럼 1학년 과정이 교양 학부 중심이 아닌 선택한 학과의 과정이 중심이 되었고 자연 계열, 공학 계열, 인문 계열 선택이 아닌 기계공학과, 물리학과, 영어 영문학과 등 직접 지원을 하는 시스템 이었다. 해방 이후 시험이 결과 와 점수 만이 대학 입학을 위한 절대 기준이 되었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추가 평가 제도는 고등학교 3년 간의 내신 평가 점수를 도입하는 것이었으며, 내신 점수가 평가의 기준 점수로 추가된 것은 82년 이후의 입학 제도 부터 이고, 88년 이후에야 시험 + 면접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점수 위주의 평가를 높이기 위해 도입 된 내신 제도도 결국 고등학교 3년 간의 시험을 통해 만들어진 학 내 서열 제도를 점수 화 시킨 것에 불과 했고, 면접의 점수와 결과는 합격의 절대 기준인 점수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제도였다. 필자는 이 제도 중 학력 고사 + 내신 + 면접을 통해 대학을 입학한 세대이다. 전국의 대학 입학 지원자들이 똑같은 시험지를 받고 똑같이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풀며, 단 한번의 시험의 결과와 점수를 기준으로 해서 입학 여부가 결정되어지는 진정한 "성적 순이 행복의 기준" 이었던 세대였다. 이 제도의 장점은 뛰어난 컨닝 실력을 갖추었거나 4지 선다 형 문제에 대해서 복걸 복으로 찍었는데 놀라운 적중률을 가지지 못한 이상,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100% 자신의 실력에 따른 결과이며, 단점으로는 개인이 가진 능력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는 개별적 평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의 뛰어난 자질을 가진 학생이나 평가 이외에 우수한 자질을 가진 학생들을 분별해 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45년 해방 이후 꾸준하게 중앙 집권과 지방 귀족의 봉건 제도를 오가거나 병행 해오던 대학 입시 제도도 사회의 변화에 의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1980년대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첫 번째로 경제적인 분야에서 선진국 진입을 지향하며 고도의 성장을 기록하던 시기이고, 두 번째로 문화와 사회의 발전과 변화가 급격하게 시행되던 시기이며, 세 번째로 교육과 미래 세대를 위한 고민의 결과로 교육 형태의 변화와 사교육의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 국민과 민중의 특징 중 하나는 교육에 대한 열의와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어떤 국가나 민족 보다 열정적인 것에 있다. 좋은 의미로는 교육의 질과 양이 향상 되었으며 이를 통해 사회에 불합리한 제도와 독재와 군부 정권의 정치 시대의 막을 내리게 만들었고, 나쁜 의미로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부모들의 대리 만족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되어 졌고,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서 서열이 학력의 결과에 의존하는 형태로 기형 변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외국의 선진 문화는 모두 좋은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고, 정부의 정책이나 방향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는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과 가까운 일본에 대한 사대주의가 싹트고 발전하던 시기였다. 가장 안 좋은 변화는 역사적으로 뉴라이트 역사 학자들의 탄생과 보수주의 자들의 문화 사대주의를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깎아내리고 외국의 문화와 역사를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역사 의식의 변화와 문화 사대주의의 등장은, 민족주의자들과 기존 독재 세력들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냈으며, 사회는 혼란과 변화의 과도기로 분열 되었고 좌, 우의 대립이 심화되고 서로가 적대 시 하는 상태였다. 80년대의 다양한 발전과 변화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민중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독재 와 군부 정권의 종말로 맞이한 민주주의 정치의 시작으로 진보 주의 세력이 사회 중심으로 들어서게 되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층의 상승과 자신의 위치 변화를 가져올 하나의 기회인 교육 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중 꾸준히 문제 시 되고 제기 된 대학 입학 제도의 획일 성과 성적 위주의 진학 제도는 인간의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정책으로 비판 받고 있었다. 사회 내부에서도 진보적인 사상의 도입으로 인간의 우수함과 재능에 대한 평가가 학력에 의한 평가 기준에서 다양한 방법과 관점을 가지고 고찰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문화적 형태와 내용의 변화로 인해, 사회는 IQ와 같은 학력과 계산 위주의 논리적 평가 기준에서 감성과 개인의 성향을 중시하는 EQ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사회 분위기는 사람의 우수성과 재능 및 자질에 대한 기준이 학력과 논리적 관점에서 인간의 감성과 본질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교육의 평가와 기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가장 우선적인 대학 입학 제도의 단점인 시험 위주의 평가에 대해 무 시험 제도 및 다양한 입학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다. 즉 지금의 수시 입학 제도는 과거 입학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여, 그들이 가진 학력 이외의 재능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서 출발한 진보적 변화의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의 기성세대이고 기득권 층인 386세대가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이끌어 갔다.
현재 수시 입학 제도의 변천과 도입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재의 수시 입시 제도가 정착이 된 건 불과 오래되지 않은 시간이다. 과거 학력 위주의 평가의 문제점이 모든 학생을 단순한 성적의 결과로 줄을 세우고 그에 맞춰 대학 또한 서열로 정리되는 결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성 확보와 평가의 기준이 단순한 국,영,수를 기준으로 학력의 수준으로 대학이 가지는 장점인 전문적이며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 졌다. 처음 시작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시절 1%내외에서 무시험 입학 제도의 도입이었다. 고등학교 3년 간의 내신과 학내 평가를 기준으로 추천을 통한 입학 제도였으나 인원의 한계와 제도를 위한 평가 기준이 바로 서지 않아 미비한 상태의 입학 제도로 유명 무실 해졌다. 점차 무시험 입학 제도의 정원이 늘어나고 대학별로 사전 입시 제도 도입을 자율화 하기 시작했고, 각 대학은 인재의 사전 영입을 위한 제도의 하나로서 학생부 종합 평가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대학의 수는 고등학생 3학년 기준으로 70%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어진 상태였다. 불과 20년 사이에 대학의 수가 늘어났으며, 대학들이 전공 과목을 전통적인 자연 과학과 인문학 및 예 체능 중심에서 사회 변화에 맞춘 다양한 과목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배워야 할 깊이 있는 과목인지 여부를 떠나 단순히 인기에 영합하여 생겨난 과들도 많으며, 또는 결과에 따라 사라진 과도 많다. 대학이 학문의 목적에서 벗어나 결국 영리의 목적으로 수익 사업으로 전환 되는 원인이기도 하며, 결국 대학이란 대한민국 20, 30대 청년들에게는 학습의 장보다는 인생에 한 줄의 프로필로서 존재하는 결과가 되었다. 대학의 문이 넓어진 만큼 신규 대학이나 기존의 명문 대학들은 자신의 학교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수시 입학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수시 입학 제도는 대학의 운영과 수입의 원천인 등록금 및 납부금을 걷어 들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 되었다. 처음 가졌던 학력 이외의 평가 제도를 도입 다양한 인재들의 대학의 문을 넓혀주고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다양하게 적용하여 기회를 열어 준다는 취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수시는 학력의 기준을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학생의 학외 활동과 사회 활동으로 쌓은 인턴 연수의 횟수와 수상 경력이 주 평가 기준이 되었다. 교육에서 교육 이외의 활동과 내용을 입학의 기준으로 잡는 것은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역량과 위치에 대한 간접적인 평가가 된다. 교육과 학습은 국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다. 그럼으로 그 배움의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수시 제도에서 사용되는 평가의 기준은 교육은 중요한 역할과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 이외의 사항들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육 이외의 평가 기준은 자신과 그리고 자신의 가족이 가지는 역량이 같이 결합 된다. 자본의 소유 여부에 따라 교육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달라지며, 자신과 자신 가족이 속한 그룹에 따라 서로가 주고 받을 수 있는 결과의 크기도 달라진다. 결국은 계급 이동의 마지막 보루로 여겼던 대학을 통한 신분 상승과 사회 위치에 대한 변화도 자본과 부모의 역량으로 정해지는 불합리를 만들어 냈다. 무시험 전형의 수시 제도는 입시 사정관 제도가 생기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다양성 확보의 역할에서 더욱 벗어난 결과를 초래했다. 입시 사정관 제도는 무시험 전형 제도를 영리 적인 목적과 일부 능력 있는 자본가와 세력들의 자녀들을 위한 제도로서 활용되기 알맞은 제도였다. 우선 평가의 기준은 대학별로 명확한 기준을 내세우지 않고 내부 기준을 만들어 활용했으며 결과와 평가의 기준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평가에 대한 각각 특약을 만들어 일부의 학생들을 위한 평가로 활용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수시 시스템을 세분화 해서 특정 세력의 입학 기회를 넓히는 역할을 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글로벌 인재 전형 이나 세계 선도 인재 전형 또는 미래 지도자 인재 전형 등의 기준은 필연적인 외국어 실력과 외국의 문물을 경험하지 못하면 원서조차 제출하지 못하는 전형이다. 결국 자본이 없는 학생들은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기 때문 공정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예체능계는 전형 자체에 과거 관련 활동의 수상이나 이력이 포함된다. 그 경우 또한 일반 학생들이 접근 할 수 없는 전형이다. 이런 여러 전형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한 인재를 위한 입시 전형처럼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특정 세력이나 인물들을 위한 전형의 하나로 활용되어 진다. 결국은 교육이 미래 세대에게 공정하게 작용하지 못하고 그 과정과 결과가 일부의 기득권 층을 위한 제도로 이용되어 지는 현실이 지금 세대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런 불합리한 입시 제도 속에서도 그래도 그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과정의 충실함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갈려는 세대들에게 이번 조국 후보의 사건은 너무 큰 아픔으로 다가 왔다. 입시 전형의 유리함도 모자라 그 과정을 편법을 동원해서 명문대에 입학한 조국의 딸과 그것을 지원한 조국에게 큰 분노를 금치 못하고, 과거 자신이 외쳤던 진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되묻고 싶은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은 선진화와 다양한 인재에 대한 기회 제공이라는 목적 하에 결국은 기득권들의 특혜로 이어지는 과정과 결과가 현실인 것이다.
국가가 생기고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국가는 속해있는 국민들에게 다양한 서비스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세금을 내고 국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국가의 제공하는 서비스는 안보, 의료, 교육, 복지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중에 가장 평등한 서비스는 교육에 대한 서비스가 가장 우선일 것이다. 교육은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무상의 지원 중 차별이 존재해서도 안되며, 서비스를 개인이나 특정 세력에 맞추어 이용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해결을 하고 교육 서비스를 받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기회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과거 획일적인 평가 속에서 다양한 입시 제도와 무시험 전형은 일부의 학생들과 교육의 틀과 맞지 않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공정함에서 발생된 입시 제도였다. 그러나 그런 입시 제도가 현실적인 틀 안에서 일부의 세력의 특권을 위해 활용되어 진다면 당연히 이는 제도를 개선해야 함과 동시에 특혜가 제공된 학생들과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징계나 법을 통한 사회적 제제가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를 방치한다면 결국은 국가가 특혜를 조장하는 주범이 되며, 결국은 국가 자체의 존폐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교육은 그 나라가 현재와 미래에 어떤 위치에 있을것 인지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며 가치 척도이다. 교육의 제도가 불합리하고 그 제공 서비스가 문제가 많은 국가의 미래는 결국 인재를 기르고 만들어 내는 교육 서비스로 인해 망국의 길을 걸어 갈 수 있다. 지금 입시 제도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고, 시행 당시의 의미를 벗어나 있다면 차라리 기존의 방식으로 되돌려 놓고 새로이 생각하고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미래 세대들인 학생들에게는 가지지 못할 수시의 높은 벽보다는 차라리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예전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가 아닌 "입학을 성적순으로 일괄평가 하는 획일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공평하게 보인다. 어설픈 제도와 서비스로 불 공정한 평가를 하기 보다는 차라리 명확한 기준과 개인의 노력과 재능의 결과인 점수에 의한 과거의 입시를 부활 시키는 게 옳은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보 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다양성의 밑 바탕에 자신들의 이기가 깔려 있어 보인다. 제도의 다양성이 꼭 공정함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님을 이번 기회에 잘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한 빠르고 정확한 해법과 결과를 내놓는 것이 정부가 아픔을 간직한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반성일 것이다.
미래의 청년 세대들인 지금의 초, 중, 고등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사회의 공정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공정성을 가장하여 많은 제도를 시행했다. 그 결과 오히려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제도가 정착되거나 진행이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모든 책임을 현 정부에게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며 지나친 행동이다. 지금 발생한 문제가 현재의 문제가 아닌 과거로 부터 생긴 문제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들이 오히려 문제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였고, 알고도 수정하거나 고치기 위해 노력 하지 않은 그 부분은 분명하게 평가 받아야 한다. 자신들이 발생 시킨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할 행동 또한 정당화 될 수 없다. 특히 평소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외치고 사회가 공정해 지기를 원하던 진보 주의를 표방한 사람인 만큼, 보수주의자나 과거 기득권을 옹호 하던 세력이 저지른 죄나 도덕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과거의 기득권과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으로 지금의 자신의 위치를 만들고 사회적 지지를 받은 만큼 그에 합당한 행동과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현재 그를 옹호하는 그룹들과 일부 지지자 들은 직접적인 개인의 과실이 아니고 문제 또한 의혹에서 진행 중 이라는 이유로 합리화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거 당신들이 상대들에게 의혹을 가지고 음모를 제안하던 그 감성과 열정은 결국 비난과 비판을 위한 자기 편의주의 적인 행동 이었는가? 또 지금까지 있어왔던 여러 사건들 중에 개인의 직접 문제 이외의 이유로 낙마하거나 자진 사퇴한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합리화는 정당한 행동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래도 그렇다고 한다면, 진정 이 사회에서 당신들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과거 독재 정권의 후예들에게 표를 주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진보라고 자칭하는 당신들에게 부탁 한번 하고 싶다. 지금의 당신들의 행동이 다른 세계의 진보주의자들과 비교해서 결코 비 도덕적이지 않은지 그리고 의혹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정황 증거들이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인지? 수 많은 이야기로 나오는 수백 가지의 내용들과 이야기들이 하나도 진실하지 못한 이야기인지? 되새겨 보라고 말하고 싶다.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아닌 외부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또한 사실에 부합한 내용을 근거로 만들어 져야 한다. 지금 조국과 관련한 사건에 대한 외부의 증언들은 대부분 반대 증언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둘 중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두 가지를 비교해보고 판단의 근거를 만든다. 맹목적인 불신과 자신들의 에고로 인해 다른 많은 국민들과 민중들에게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자리는 준 사법권인 검찰과 경찰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자리이다. 그리고 장관의 임명은 개혁의 수단으로서 존재하지 결코 장관 임명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지금 조국 지지자와 옹호 자들은 개혁을 위한 목적 보다는 장관 임명이 목적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필자는 조국이 장관이 되든 아니든 결과에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단지 장관 임명의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한 지금의 모습을 보니 임명 이후 벌어질 독선과 아집의 결과가 보이기 때문 두렵다. 검찰 개혁이 정권의 개인적 복수의 무기로 사용이 될 것이 뻔해 보이고 이로 인해 현 정부는 국민과 거대한 대립이 일어나 대한민국 정치를 과거 10년 이전보다 더 아득한 과거로 후퇴하게 만들 것 같은 불안감이 일어난다. 결국 자신들의 정권 유지와 권력의 재 창출을 위한 개혁으로 끝나고 만약 다시 정권이 과거의 독재 후예들에게 돌아간다면, 이후 벌어질 피 바람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그런 끔찍한 미래가 당신들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적이며 가장 강력한 사실로 여겨진다. 한번 더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걱정을 다시 새겨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 당장 평가는 하지 않지만, 언젠가 역사는 지금의 시간을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역사는 지금의 시간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로 판단하고 미래의 세대는 지금 당신들을 교훈의 대상으로 삼을 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 낸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지금과 같은 문제를 비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결국 대의로 포장한 정부와 정권의 이념 전쟁의 파편일 뿐이다. 역사 속에 반 민주 세력의 집권으로 그리고 지금 세대가 선택한 민주적 오류의 표본으로, 다른 국가나 자국의 미래의 세대가 교훈으로 삼을 에피소드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촛불을 들고 정권의 퇴진을 외칠 때 필요했던 건 이념도 사상도 그리고 도덕적 가치의 기준도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일은 민주주의를 직접 우리 손으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결과였다. 그리고 이루어 냈다.
그런데 지금의 작은 사건이 어쩌면 미래에 민중의 오류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싹트고 개혁이라는 허울 아래 속아 넘어간 민중이라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평가 받을 것이 두렵다. 어쩌면 나의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적 사고 아래 나온 선택이다. 과정의 공정함과 논리성이 결과에 정당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반대가 꼭 해야 할 결정이고 행동임을 자신한다. 이후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 그 몫은 오롯이 현 정부와 정권의 책임임을 직시하고 최선의 선택으로 사회의 안녕과 현재 벌어진 다양한 국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길 바란다.
후세의 평가가 지금 우리들의 행동에 도덕성을 심어주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동기를 준다. 만용과 용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정부와 정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