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도시가 멋을 편집하는법, BEAMS&BEAKER

편집샵-도쿄의 BEAMS(빔즈), 서울의 BEAKER(비이커)에 관하여

by 김동숙

안녕하세요! 일상 속 브랜드이야기로

편안한 대화주제를 만들어 드리는 남자.

스물아홉 번째 글로 인사드리는 브랜드 토커 김동숙입니다.


일주일동안 도쿄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추운겨울의 색과 냄새가 도쿄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더라구요.


오늘은 같은 듯 다른 도쿄와 서울을 대표하는 편집샵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에피소드는 한국을 대표하는 편집샵 'BEAKER' 와 일본을 대표하는 편집샵 'BEAMS' 입니다.


편집샵을 떠올리면, 나는 늘 옷보다 먼저 도시의 온도를 생각하게 된다.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서울(좌)과 도쿄(우)

도쿄와 서울.
같은 아시아, 비슷한 속도, 비슷한 소비 문화 속에 있지만
두 도시를 걷다 보면
‘멋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걸 금세 느끼게 된다.


도쿄의 공간에는 취향이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서울의 공간에는 지금 이 도시가 선호하는 균형과 속도가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글에서 도시를 대신해 말해주는 공간,
편집샵이라는 형태에 주목해보고 싶어졌다.
편집샵은 단순히 옷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그 도시가 무엇을 멋이라고 믿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화적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름이 있다.

도쿄 하라주쿠에서 시작해 일본 편집샵 문화의 원형이 된 BEAMS,
그리고 성수와 한남을 중심으로 서울의 도시 감각을 큐레이션해온 BEAKER.


이 두 브랜드는 같은 ‘편집샵’이라는 형태를 공유하지만,
출발점도, 편집의 기준도, 소비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전혀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도쿄와 서울이라는 도시가
취향을 다루는 방식, 나아가 삶을 정렬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편집샵은 왜 탄생했을까 — 브랜드 이전의 브랜드

Pinterest에 'Curated shop'을 검색하면 다양한 취향을 조합한 이미지가 뜬다.

편집샵은 원래 ‘여러 브랜드를 모아 파는 가게’로 태어나지 않았다.

전후 소비사회가 형성되던 시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단일 브랜드보다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편집샵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었다.
“우리는 이런 취향을 믿는다.”
“이런 조합이 지금의 삶에 어울린다.”

편집샵은 상품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취향을 선언하는 플랫폼으로 탄생했다.


이 맥락 위에서 보면 BEAMS와 BEAKER의 차이는 단순히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아니다.
그들은 편집샵이라는 개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브랜드다.

뉴욕을 대표하는 편집샵 OPENING CEREMONY(좌), 파리를 대표하는 편집샵 COLETTE(우)


BEAMS — 일본이 ‘문화’를 수입하던 시절의 기록과 편집


오른쪽은 신주쿠에 위치한 BEAMS JAPAN _ 일본 전역의 다양한 컨텐츠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빔즈의 플래그쉽 스토어 다.

BEAMS는 1976년, 도쿄 하라주쿠의 작은 매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은 고도 성장기의 한가운데 있었고, 젊은 세대는미국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에 강하게 매혹돼 있었다.


서핑, 데님, 캠퍼스 룩, 재즈, 빈티지는 일본에는 없지만 모두가 동경하던 세계였다.

BEAMS는 그 타이밍에 미국의 문화를 그대로 들여오지 않고 일본인의 감각으로 번역을 시도했다.

그래서 초기 컨셉부터 명확했다.
American Life Shop.
옷이 아니라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공간.

매장은 정돈돼 있지 않았고, 옷과 가구, 소품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의도된 것이었다.

BEAMS에게 편집이란 질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조합을 통해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후, 미국의 문화를 동경해 다양한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출간하게 된다.


BEAMS의 편집 철학 — 취향은 쌓이는 것이다


BEAMS가 독보적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취향을 정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쌓여야 할 역사로 봤다.

그래서 BEAMS에는 수많은 레이블과 서브컬처가 공존한다.


BEAMS PLUS, BEAMS BOY, Ray BEAMS, bPr BEAMS 등


각기 다른 취향이지만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지금,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BEAMS의 디스플레이가 때로는 잡다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취향의 완성보다 취향의 과정을 보여준다.

수집하고, 겹치고, 다시 꺼내 입는 감각.


BEAMS는 일본이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온 태도의 집약체 브랜드다.

현재 빔즈는 상황에 맞는 연출을 통한 큐레이션으로 다양한 Private Label을 운영 중이다.


BEAKER — 이미 넘쳐나는 세계에서 ‘선택’으로 태어나다


오른쪽은 성수에 위치한 BEAKER SUNG SU _ 비이커 10년을 맞이해 오픈한 플래그쉽 스토어 다.


BEAKER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편집샵 문화는 일본처럼 ‘없는 문화를 들여오는 단계’를 건너뛰었다.

이미 글로벌 브랜드와 정보는 넘쳐났고, 문제는 수입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2012년 등장한 BEAKER는 이 현실을 정확히 읽었다.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브랜드 이름부터 상징적이다.


BEAKER - 실험기구.


새로운 것을 섞고, 반응을 관찰하는 도구.
BEAKER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감각에 반응하는지를 실험하는 플랫폼으로 시작했다.


BEAKER의 편집 철학 — 취향은 정제되는 것이다


BEAKER의 매장은 늘 조용하다.

여백이 많고, 빛은 정돈되어 있으며 상품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이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철학이다.


BEAKER는 취향을 과시가 아닌 조율의 문제로 본다.
빠르고 정보가 넘치는 도시일수록 더 정제된 선택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BEAKER의 편집은 늘 “지금 입기 좋은 상태”에 머문다.


과하지 않지만 분명하고, 많지 않지만 부족하지 않다.

이는 이미 모든 것이 있는 시대에 서울이 선택한 취향의 전략이다.

BEAKER는 바쁜 일상 속 고객들에게 빠른 취향을 선도적으로 제안해 주는 형태로 운영한다.
BEAMS 와는 다른 BEAKER의 편집샵 운영 철학 - 패션을 취향이 아닌 하나의 아이템/도구로 생각한다.


디스플레이의 차이 — 철학은 공간에서 드러난다


BEAMS의 공간은 마치 오래된 취향의 서랍 같다.
예상치 못한 조합, 조금은 엉성한 배치, 그 안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반면 BEAKER의 공간은 잘 정리된 책상 위에 놓인 오브제 같다.
간격과 균형, 빛과 동선까지 계산된 상태.


같은 옷이라도
BEAMS에서는 ‘이야기’가 되고,
BEAKER에서는 ‘상태’가 된다.

편집의 차이는 공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톤앤매너, 느낌부터 다른 디스플레이 (좌 : BEAMS / 우 : BEAKER)


편집은 결국 사람의 안목에서 완성된다


편집샵을 오래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공간을 규정하는 건 브랜드도, 인테리어도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준이라는 것.


BEAMS의 스태프들은 유행보다 개인의 취향 역사를 중시한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추천하는 아이템에는
각자의 시간이 담겨 있다.


“BEAMS는 옷을 추천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취향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간이다.”

그들의 편집 기준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다.


반면 BEAKER의 팀은 자신들을 ‘셀렉터’라기보다
필터에 가깝게 정의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더 많이 보여주기보다 덜 보여주는 선택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BEAKER의 편집은 항상 현실적이고, 냉정하며, 정확하다.
취향을 보존하기보다 취향이 지금 작동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편집이 결정되는 순간 — 무엇을 놓지 않는가


편집샵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사실 고객이 오기 전,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 일어난다.


수십 개의 브랜드와 수백 개의 아이템 앞에서 편집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여줄지보다 무엇을 끝까지 놓지 않을지를 고민한다.


BEAMS는 지금 당장 팔리지 않아도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취향을 남긴다.

BEAKER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지금의 도시와 맞지 않으면 과감히 내려놓는다.


하나는 시간을 향해 묻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향해 묻는다.

그 질문의 방향이 공간과 진열, 브랜드의 온도를 결정한다.


마치며


BEAMS와 BEAKER는 같은 편집샵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결코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BEAMS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해왔는가?”

BEAKER는 묻는다. “지금의 당신은 어떤 상태를 살고 싶은가?”


하나는 취향을 축적하는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취향을 조율하는 브랜드다.

그래서 BEAMS의 공간에는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남아 있고,
BEAKER의 공간에는 도시가 선택한 리듬이 흐른다.


편집샵은 더 이상 옷을 고르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우리가 어떤 세계를 믿고,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지를 조용히 드러내는 공간이다.


도쿄가 BEAMS를 통해 취향의 시간을 말해왔다면,
서울은 BEAKER를 통해 취향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유행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대하는방식에서 비롯된다.


편집이란 결국, 무엇을 팔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끝으로,

25년도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구독자 분 들도 남은 하루 잘 마무리 하시면서

26년을 25년의 내 취향을 켜켜이 쌓아가 '나 다움을 완성' 해 가는 해가 될지

혹은 조율을 하며 '나 다움에 변화' 를 주는 해가 될 것인지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브랜드토커 김동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은 각 브랜드의 홈페이지와 온큐레이션의 기사 내용을 일부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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