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생각하면 못 살아요.
버스에서 오래도록 쉬이 지나가는 풍경에 눈이 머물러야 했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가을 바람이 신선하게 불어와 낙엽이 떨어지는 날에는,
오래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소스라치게 생각나는 날이었다.
'고마워, 이런 기분 느끼게 해줘서,' .
누군가를 생각해야 할 것만 같아, 하늘을 치어다 보지만,
다시 옷깃을 여미며ㅡ 생각을 단속하게 만드는 계절이 가을이었다.
풍요로운 추석에, 티비프로그램에서는 '내 생애 아름다운 순간'이란 프로가 방영되었다.
실버타운이던가, 노인요양시설이던가 하는 곳에서 할아버지 두 분과 할머니 한 분의 삼각관계 로맨스가 펼쳐지는 듯했다. 한 할아버지는 잘나가는 사업가였고, 한 할아버지는 공학도 출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야속한 세월에 많은 관계 속에서 많은 것을 잃은 듯 그들은 늙고 아팠다. 그리고 한참 뒤,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말은 이들을 삼각관계로만 바라보았던 내 자신을 참 부끄럽게 만들었다.
할머니, 할머닌 예전에 어땠나요?
"과거요? 과거는 묻지 마세요. 과거 생각하면 못 살아요."
여러 시간동안 무엇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했던 시간속에서 시간조차, 과거조차 꼭꼭 붙들었던 나는 정말로 많은 것들을 가졌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생사를 오가며 서로 보고싶었다고 두 손을 맞잡으셨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졌고, 나 또한 손을 함께 맞잡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우두커니 누군가를 생각하고 싶은 계절이었다. 하늘은 풍요롭지만 마음은 빈곤했기에 더욱 쓸쓸한 계절이었다.
가슴이 뭉글하다 못해 홧홧해져, 다시금 과거를 생각하면 못산다는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엉터리같은 계절, 그래서 머무르고 머무르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사로잡는 계절.
결국, 한 사람을 생각해내어 다시 꽁꽁 감추고 싶은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