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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이 Oct 20. 2015

4. 낯선 사람의 위로

눈물은 항상 낯선 곳에서 난다.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때, 낯선 사람의 위로를 떠올린다.



  내가 따지듯 물었을 땐, 그 때의 전화가 마지막이었다. 당연히 다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는 무언의 표시만을 남긴 채, 그 후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떠돌고 ‘전화를 받을 수 없어’라는 말만 되풀이 되어서 돌아왔다. 만나기로 한 날, 그를 붙잡으려 무작정 떠났지만, 나에게 그럴 권리가 없었던 것 같아 한참을 친구에게 ‘가면 안되겠지?’라고 물었었다. 내가 그에게서 바란 것은 그냥 단 한마디, ‘못 갈 것 같다’는 그 말이면 충분했었다.
   눈물은 항상 낯선 곳에서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꾹꾹 숨기는데 그게 잘 되지 않자, 콧물, 눈물 닦을 곳이 없어 킁킁거리며 소매로 훔치고 있었을 때였다.
  겨우내 진정시키기 위해 두꺼운 전공 책을 붙잡으며 더욱더 성숙해지자고 다잡고 기도하고 있었을 때였다.


  한바탕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옆 좌석 남모를 아저씨 한 분이 기차 내에서 운영되는 간식키트에서 달달한 카라멜 마끼야또 커피와 쓰디쓴 블랙아메리카노를 사더니, 나에겐 쓰디쓴 블랙 아메리카노를 건네셨다.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아저씨는 커피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고, 나 또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선 쓰디 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 이 커피 정말 쓰다, 하필 블랙 아메리카노일까’라는 생각이 미쳤을 때, 아저씨의 행위는 위로가 되어 앞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렸다.


  아저씨는 학생이냐, 어디서 왔냐 등 이러쿵저러쿵 말을 걸어왔고, 그런 말 따윈 아무래도 들리지 않았다. 숨을 후후 내 뱉으며 겨우 진정시키려하니, 아저씨는 “힘들죠”라며 먼 곳을 보며 읊조렸다.


  사색이 되었다. 짧은 그 말에는 얼마나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을까, 그 말끝의 한 토막도 안 되는 여운은 또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할까. 아니, 이 아저씨.  어쩌면 이토록 나를 훤히 들여다보는지,

사진 출처 : https://www.instagram.com/gamgaak/

  천체 망원경으로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목구멍에서 케케묵은 덩어리가 내솟아 피어올랐다. 물론 그가 나에게 건넨 커피 한 캔은 이내 전공 책을 붙잡고 있는 내가 기특해 보여 그런 것을 곧 깨달았지만, 하지만 의도가 어찌되었든, 그가 해준 위로는 화장실도 참으려 물도 안 마시는 나에게 이뇨작용이 훌륭한 커피를, 그것도 달달한 커피 대신 아주 진하고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하더니...... .


  감정이 마구 쏟아져 버릴 것 같아 “다들 하는 걸요... ... 죄송합니다.”란 말을 남기고 좁은 기차 좌석을 얼른 떠났다. 눈물은 낯선 곳에서 났고 그래서 꼼짝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오래도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은은한 위안이 되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폭우처럼 당신은 나를 피해버렸다.  장마 끝에 겨우 빛이 난 여름 날, 강물의 빛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당신 생각에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당신의 33가지 빛 중 33가지는 아니더라도 28가지쯤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일곱 가지 빛깔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당신의 일곱 가지 빛을 지우려 다른 사람을 만났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으로 당신이 꿈에 나타나 나를 한동안 괴롭혔다.


  그런 날에는, 나는 편의점으로 가 아저씨가 주었던 똑같은 커피를 사서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런 날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또 다시 화장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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