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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미 Jan 19. 2022

이 도시를 기어코 살아내고, 사랑하는 이유

ep91. 에이트(eight)-달콤한 나의 도시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친구와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렸다. 볼에 닿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페달을 밟는 허벅지가 뻑뻑해질 때쯤 뚝섬 유원지도착했다. 이미 하늘은 보랏빛을 띄고 있었다.  건너 빌딩  너머로는 해가  넘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야외에 앉아 있기엔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한강에서 빠질 수 없는 라면과 핫바를 데워서 손을 비비며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강 건너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어느새 이 도시에서의 삶도 1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도시. 길도 풍경도 말투도 사람들도 낯선 도시.

하지만 모든 게 새롭고 설레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던 도시.

지하철역도 제대로 못 외워서 쩔쩔매던 열아홉의 소녀가 이 도시에서 서른을 맞는 동안,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실감 나던 순간은 해가 지는 한강을 바라보던 때였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 퇴근할 때, 무심코 고개를 들어 이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면

문득 이 도시가 서울이고, 나는 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실감했던 것 같다.




이 날도 강 건너 빨간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도시를 기어코 또 일 년 더 살아냈구나.



나는 이 풍경을 좋아해.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의 한강. 내가 말했다.

맞아, 나도. 예쁘잖아, 이 시간. 핫바를 먹던 그가 대답했다.

난 늘 이 풍경을 보면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

이 도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무사히 버티고 살아내고 있다는 게.

그래? 신기하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서울에서 태어나 스물아홉 해를 살아온 그가 대답했다.


나한테 이 도시는 저절로 살아지는 도시가 아니라

기어코 살아내야 살아지는 도시거든.

어느새 이 도시를 십여 년을 살아낸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이 도시가 좋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살아지는 도시가 아니라서.

긴장하고 때론 버텨내고, 그러면서 기어코 살아내야 하는 도시라서,

이 도시에서는 내가 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


그래서 이 풍경을 볼 때면,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구나 싶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쉬듯 당연하게 이 도시에서 살아왔던 그가 굳이 이곳에 새롭게 발을 딛고 살아내 온 내 모든 감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만.

​​

그렇게 또 기어코 이 도시에서 살아낸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2021.12)






벌써 새로운 해를 맞은지도 1달이 지나가고 있네요.

저는 올해로 공식 서른 살이 되었답니다. 30이라는 숫자가 막연하게 느껴지던 것에 비해서는 제법 안정적으로 삼십 대의 세상으로 착륙한 기분이에요.


어느새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도 인생의 1/3을 꽉 채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서울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두려웠던 기억도 납니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 복잡한 지하철 역들, 좁은 4평짜리 원룸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나가는 월세, 자주 보지 못하는 가족들, 뜸해지는 고향 친구들과의 만남까지.

누군가는 익숙한 울타리 안에서 보내는 20대를 나는 왜 이렇게 낯선 곳에서 애써 발을 딛고 버텨내려 애써야 하는 건가,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가끔은 괜히 서럽고 억울했던 날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저에게 이 도시는 여전히 버티고 살아내어야 하는 곳이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되었어요. 이 도시를 살아내어 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는 것 알기 때문일 테죠.

새로운 30대의 시간도 저는 이 도시의 불빛에 몸을 섞으며 기어코, 제대로 살아내 보려 합니다.

꽤 자주 씁쓸하지만 가끔은 제법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요.


https://youtu.be/aXz1fdHsfcY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여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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