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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Dec 02. 2020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1931년)

밤이 깊다


열 살 맏이가 밤 앓이 중이다. 안방에서 자기 방까지 연결된 복도의 짧은 어둠에도 무서워한다. 언제나 둘째 손을 잡고 간다. 일곱 살 둘째는 어둠보다는 엄마 아빠가 옆에 보이지 않은 것에 민감하다. 어둠은 불편할 뿐 무서운 건 아니다. 복도의 조명 스위치를 끄고 가는 둘째 모습이 씩씩하다. 낮은 낮이고 밤은 밤이다. 맏이는 어둠 뒤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중이다. 이겨내겠지 싶어 모른 척한다.

오십을 넘긴 우편 항공노선 책임자 리비에르는 야간비행이라는 암흑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상업적인 항공산업은 언젠가는 밤낮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의 해결책을 준비해야 한다생각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자신이다. 전쟁터에서 그가 가진 '신념'은 돌격대장의 창이다.


야간 비행에는 고통이 따른다. 생과 사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고통 없이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것도 오직 사랑하기만 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망과 미움도 보면 사랑의 다른 표현 아니던가. 밤은 암흑이라는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야간비행을 숙명으로 여기는 리비에르에게 밤은 모든 것을 어둠에 묻는, 감추는 존재가 아니다. 보여주는 존재다. 사람을 보여주고 아우성을, 빛을, 근심을 보여준다.


물론 밤은 쉽게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다. 어둠 앞에 망설이는 자에게 밤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어둠의 복도를 건너는 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고 되지 않는다. 다시 굴러 떨어진 돌을 보며, 묵묵히 산 아래로 내딛는 시시포스의 발걸음만이, 행동만이 가능하게 해 준다. 리비에르는 조직에 영혼을 불어넣고 의지를 부여하고자 한다. 방법은 단호함이다. 지시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중징계를 내린다. 정시 출발에만 수당을 지급한다는 규칙 앞에서는 10m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부하 직원들이 날씨를 핑계로 나태해지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날씨가 개기를 소원하도록 만들어 낸다. 한 방향으로 가는 일이라면 이처럼 부당한 처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싼 어둠을 인정해야 한다. 리비에르는 조직원들이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창조하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렇게 자신을 극복해야 밤은 온전히 보이는 것이 된다. 동정에 젖는 순간 비극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 리비에르는 많은 시련을 통해 소리 없이 다가오는 비극을 꿰뚫는 눈을 얻었다. 동료를 위험에서 구하고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좋은 방패다. 하지만 어떤 밤은 대책이 없다. 태풍으로 모든 것이 단절된 밤을 만나면 인간은 초라해진다. 이런 시련을 통해 우리는 빈 공간을 알게 된다. 완벽한 것도 영원한 것도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만이 영원한 것이다. 인간이 겸손하게 끊임없이 전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밤이 깊어진다. 밤이 깊을수록 하늘에, 땅에, 우리들 마음에, 별은 더욱 빛을 낸다. 태풍에 조종사를 잃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비행장에 외침 하나가 어둠을 가른다.
"좋아, 출발!"
다시 엔진의 포효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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