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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Feb 10. 2021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우리 본성의 어둠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


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비행기로 후송되던 한 무리의 영국 소년들이 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대여섯에서 열두 살에 이르는 이 소년들은 열두 살 랠프를 대장으로 선출한다. 랠프의 지휘 아래 생존 방법을 찾고 구조를 위해 봉화를 올린다. 그러던 중 불을 관리하던 잭과 랠프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겨 소년들은 두 패로 나뉜다. 오두막을 짓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랠프와 달리 소년들을 겁에 질리게 만든 ‘짐승’을 잡으러 나서야 한다는 잭은 자신을 따른 아이들과 함께 무리를 떠나 사냥에 나선다. 불안한 상황에서 소년들 사이의 갈등은 심해지고 리더가 된 잭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점점 광포해진다. (민음사 책 요약)

‘우리는 규칙을 만들고 또 거기에 복종해야 해. 우리는 영국 국민이야. 즉 우리는 야만인이 아닌 거야.’

처음에 합심했던 생활과 달리 잭의 무리는 멧돼지를 사냥하는 몰이꾼처럼 랠프를 쫓는다.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마구 울던 랠프의 모습은 내면화되었다고 믿었던 문명의 가치가 야만의 폭력 앞에서 한낱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문명이 본능의 억압에 기초한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라던 프로이트에 따르면 야만의 시대에 우리 선조는 더 자유롭고 솔직하게 충동과 감정을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한 개인의 성장에 비유하면 우리는 어렸을 때 더 야만적이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인 시기는 두 살 무렵이다. 아무 망설임 없이 동생을 때리고 바깥으로 밀어 버릴 나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스티븐 핑거는 아이들이 어떻게 공격성을 익혔는지를 묻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격성을 버렸을까 하고 묻는 질문이 옳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 본성의 어둠은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다.’ 광기 어린 불안과 공포 앞에서 <파리대왕>의 소년들이 보여준 음울한 우화를 단순히 허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악의 평범성’ 앞에 내일의 나 역시 쉽게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꿈을 꾸지만, 불안을 먹은 어둠은 공포를 키운다. 어둠을 타고 아무 이유 없이 휘몰아치는 악(惡)에 우리 삶은 파편화되어 허공 속을 부유한다. 나는 그 해결책으로 문명과 이성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명과 이성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매섭게 불던 바람과 다르지 않다. 날 것의 야만에서 표출된 광기를 폭력이라고 부른다면 2021년을 사는 우리에겐 사회에 적응시킨다는 명분 하에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문명의 규칙이 더 폭력적이다. 이 모든 실패와 시련이 햇살처럼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깨우침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묵묵히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부족했던 용기를 조금이라도 북돋기 위해 오늘 다시 <파리대왕>의 소년들을 만난다.


새해 복 많이 받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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