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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마 May 22. 2023

자연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삶의 공간은 궁금해하는 만큼 넓어진다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1852

<창가의 여인>, 1922


한국미의 특징이라면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에서 ‘신명’을 들 수 있다. 멀리 독일은 ‘멜랑꼴리’를 자주 이야기한다. 독일인은 현실 여건이 어려워지면 관념세계로 물러나서 순수한 논리적 사고로 현실을 재인식한 후에, 무언가 숭고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역사에 재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을 끌어주는 힘이 깊은 상념을 뜻하는 멜랑꼴리다. 멜랑꼴리에는 타의가 없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기 성찰을 끌어낼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광기로 흐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세상을 관통하는 질서를 찾는데 매달렸다. 그 질서는 인간을 진보의 끝자락에 세워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파고들수록 세상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 더 분명해졌다. 근대의 시작을 열었던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내걸었지만, 결국 나폴레옹의 전제 권력으로 귀결되었다. 자신들이 찬미해 온 가치관의 죽음을 지켜보는 나날이었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살아 있는 동안 항상 죽음을 경험한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각성은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이유이면서 까닭을 알 수 없는 근원적 불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죽음은 본질적으로 삶을 낭만적으로 이끈다. 낭만은 인간 정서를 환기시키고 정화시키는 매력을 지녔다. 낭만적 경향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다른 나라보다 관념적이고 종교적인 성향을 띠었다.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940)는 엄격한 도덕을 강조하는 루터교 가족 안에서 자랐다. 어린 나이에 엄마의 죽음을 지켜봤고, 천연두와 장티푸스로 누이들을 잃었다. 충격적인 것은 얼음이 깨져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동생이 익사하는 사고였다. 극도의 불안을 끌어안고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풍경을 내어준 자연 덕분이었다. 자연은 프리드리히를 무질서한 질서의 일부로 품어서 항심(恒心)을 느끼게 해 주었다. 프리드리히에게 자연은 신의 언어로써 신성함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신이 발현된 모습과 같았다. 


프리드리히는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다. 독일인의 무의식에 새겨진 풍경으로 재해석해서 그렸기 때문에 프리드리히의 그림은 인간이 세계와의 연관관계를 생각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프리드리히는 풍경을 그렸지만 풍경 속에 자연과 종교를 결합되어 있었다. <산속의 십자가>에서는 십자가 위의 예수를 산꼭대기에 작게 그려서 자연의 일부로 묘사했다. 신성모독 논란이 일었지만, 이를 계기로 프리드리히는 더욱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공하면서 프리드리히는 조국의 죽음을 목도하였고,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편에 속했다.


프리드리히는 화가를 신의 계시를 매개하는 종교적 소명을 받은 자로 여겼다. 또한 조국을 독립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애국 전사로 여겼다. 그림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로 구도자나 수도승 그리고 저항의 의미를 담아 옛 독일 복장을 입은 남성을 그렸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삶을 매개자에 투사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자, 사람을 신에게 연결시켜 주는 매개자, 억압된 나라를 해방된 나라로 이어주는 매개자였다. 매개자는 주어진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간다. 매개자의 삶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프리드리히는 그림에서 성공을 일구었고, 독일 드레스덴이 해방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드레스덴 예술원 회원에 선출되었고 안정적인 급료를 받게 되었다. 항산(恒産)이 항심(恒心)을 낳는다고 했던가. 삶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결혼과 자녀라는 미래를 꿈꿨다. 44세 프리드리히는 25세 카롤리네 봄머와 결혼했다. 아내는 전업주부였지만, 쾌활하고 유머가 넘쳤다. 그동안 프리드리히가 추구한 사랑은 자신과 민족의 가능성을 발견한 장엄한 자연 풍경을 향해서였다. 프리드리히의 사랑은 비장하게 낭만적인 것이었는데, 아내의 사랑은 자연스럽게 낭만적이었다. 새로운 풍경의 발견이었다.


카롤리네와의 만남 이후로 프리드리히 그림에는 정다운 변화가 일어났다. 여인들이 자주 등장했고, 등장인물은 상당히 커진 모습으로 화면 중앙에 의미 있게 그려졌다. 사교적이지 못했던 프리드리히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만나면서 내밀한 관계를 돈독히 이어갔다. 과거에는 자신의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피력하는 것 자체를 망설였는데, 이제는 마음을 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꿈꾸었다. 그 무렵, 프리드리히는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창가의 여인>은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


일반적으로 인물의 뒷모습은 관람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아와 타자 사이를 오고가는 경험을 하게 한다. 관람자는 자신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반성과 재인식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낭만적 인식에 도달한다. 하지만 <창가의 여인>에서 여인의 뒷모습은 기존과는 사뭇 다르다. 여인은 왼쪽으로 상체를 살짝 기울인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얼핏 드러나는 가치를 매개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프리드리히다. 여인은 정면을 바라보며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궁금해하는 중이다.


여인의 뒷모습에서 프리드리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온통 그녀에게 초점을 맞춰 그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일까? 장식이 극도로 배제된 실내 공간은 여인의 마음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초대장 같다. 프리드리히는 그녀가 궁금하다. 궁금한 사람은 만남을 망설이지 않는다. 바깥을 향한 궁금증은 종국에는 자신에게 수렴하여 자신을 찾는 길을 열어준다. 삶의 공간은 궁금해하는 만큼 넓어진다.


여인이 서 있는 자리는 더 이상 주어진 사명을 매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계의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바람직한 자리다. 프리드리히 자신의 색으로 존재하는 자리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자연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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