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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석 Jul 24. 2022

과거를 내려 놓고 새로운 방식으로 싸우다

혁신적인 제품으로 승리를 쟁취하다

23전 23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승리의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왜 조선의 다른 장수들은 실패를 했고, 이순신, 권율, 의병들은 승리를 거둔 것일까?


이를 분석해 보기 위해서는 우선 임진왜란 초기의 신립의 탄금대 전투와 용인전투를 살펴 보려고 한다.


탄금대 전투를 지휘한 신립 장군은 북방의 유명한 명장이었다. 북방에 침입한 이탕개를 격퇴하고 두만강을 건너가 야인의 소굴을 소탕하고 승리한 경험이 있는 기마전술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이 과거의 성공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 탄금대 전투이다.


부하들이 적은 군대로 일본군을 막으려면 지형이 험한 조령에서 막자는 의견을 주었으나 신립 장군은 자신이 자신 있는 기병(騎兵)을 쓰려면 평야에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결국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기마전술을 펼쳤으나, 논이 많아 말을 달리기 불편했고 결국 힘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크게 패배하게 되었다.


일본군의 조총, 말이 달리기 불편한 논 등 자신이 유리한 북방의 전장이 아닌 곳에서의 기마전술은 결국 실패를 가져 오게 되었다.


용인전투는 임진왜란 초기에 5만명의 남도근왕군(南道勤王軍)이 겨우 1,600명의 일본군에게 크게 패한 전투이다. 아침밥을 지어먹다가 1,600명의 일본 특공대에게 무참하게 당하게 된 전투였다. 수십년간 전쟁 속에서 단련된 일본군의 능력에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밀리는 상황에서 이순신, 권율, 곽재우 등의 의병의 승리가 전쟁의 흐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 분들의 승리는 어떤 원인에 기인을 하는 것일까?


권율 장군은 이치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이라고 하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우리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행주대첩은 아주머니들의 행주치마에 돌을 나르는 등 목숨을 건 노력으로 승리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류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권율 장군의 또 하나의 승리의 원인을 화차(요즘의 다련장 로켓포)를 많이 활용한 것을 권율 스스로도 승리의 요인으로 이야기했다고 하고 있다. 화차는 요즘의 다련장로켓포와 같은 것으로 신기전 100발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다.


곽재우 장군은 현대로 치면 게릴라 전술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전술로 적의 보급로를 끊는 타격을 주었다. 지형을 잘 알고 있는 강점을 활용한 기습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전투로 수많은 의병들에게 희망을 주어 적의 보급로를 끊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전투 방식과 무기를 도입하였다. 맨 먼저 누구나 알고 있는 거북선을 도입하였다. 일본군의 백병전 실력과 조총의 무서움을 익히 들은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통해서 백병전이 통하지 않는 돌격함을 만들어 냈다. 당파(부딪쳐서 깨부수는 전술, 충파라고도 함)와 사방 포격전이 가능한 배가 바로 거북선이다. 적진의 한가운데에서도 아군의 피해 없이 적진을 교란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북선을 통해서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대첩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이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전투로 일본수군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용인전투의 주역 와키사카라는 장수가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섬에 표류하여 각고의 고통을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의 또 하나의 발명품은 함포전이다. 이전까지의 해상전투는 거의 백병전이나 화살로 승부를 가르는 전투가 많았다. 대포는 정확도가 떨어져 위협용으로나 활용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순신 장군이 국가간 대형 전쟁에서 거의 세계 최초로 함포전을 활용하였다. 특히 학익진鶴翼陣같은 진법을 통해서 화포의 화망을 형성하여 적에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준 것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 통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이순신은 무기의 우수함만을 활용해서 바다에 안전하게 떠다니면서 싸우지 않았냐고... 하지만 손자병법에 보면 가장 뛰어난 장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장수이고, 자신의 군사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장수라고 적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순신 장군은 새로운 무기와 전투방법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한 창조적인 문제해결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현대에도 임진왜란이 주는 교훈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세기의 대공사인 수에즈운하를 성공시켰던 레세프라는 세계 최고의 토목전문가는 주위에서 말리는 대도 그 방법 그대로 파나마운하에 적용했다가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젊어서 성공한 벤처기업가, 연예인이 중년에 들어서 크게 파산하고 재기하지 못하는 것도 우리는 많이 보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과거의 성공경험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매순간 순간 과거를 내려 놓고 지금 이순간에 맞는 새로운 방법으로 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진리처럼 다가온다.


사진 : 거북선.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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