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가라, 2020년!
밤에 잠이 들 때,
'아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1년 뒤였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죄인도 아닌데 감옥에 갇혀있는 느낌이 너무 싫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스스로 게을러지는 느낌이 너무 싫었고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모른 채 하루에도 몇 번씩 속에서 불덩이가 튀어 올라오는 느낌이 너무 싫었고
우울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울한 느낌이 너무 싫었고
2020년 초에 세워놓은 계획이 거의 실행된 것이 없다는 게 너무 싫었다.
늘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아쉽고, 나이를 먹는다는 게 슬펐지만
올해는 얼른 2020년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2021년이 올 거야, 내년에는 좋아질 거야.
이 버릇 같은 중얼거림 하나로 버틴 한 해였다.
그런데... 벌써 2020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시간이란 참.. 빨리 간다, 싶어 왠지 서글픈 날이다.
펜데믹을 보내며 절실히 느낀 게 있다.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그 일상이 금방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 나의 안일함과 착각.
그래서 깨달은 일상의 무게.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지루하다.
뭔가 좀 색다른 게 없을까.
나는 내 곁에 늘 머물던 행복을 보지 못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웃으며 손을 잡고 안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고 만날 수 있었던
여행이 가고 싶으면 언제든 가던..
단순했고, 어쩌면 지루하기까지 하던 그것들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라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다가 다시금 깨닫는, 바보 같은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신을 믿진 않지만, 신이 있다면 그 당연한 것들을 다시금 깨닫고 살라고 이런 시련을 주신 게 아닌가.... 생각했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어떤 순간에는, 그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것처럼..
그 일상이 나에겐 공기 같은 것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새해 소망은, 작고도 풍요롭다.
어떤 특별한 것을 쫓고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 하루와 나의 사람들에 집중하고, 감사하자고.
행운을 꿈꾸기보다는 행복을 꿈꾸자고.
결국 행복이란 어떤 큰 것이 아니라 내 시간 속에 있는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였다.
난 그걸 올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 사람들, 내 소중한 그 모든 것에 마음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살아도 시간은 짧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올해 가장 감사한 사람은, 가족이다.
나의 남편, 나의 딸, 나의 부모님.
늘 짜증을 내고 김정 기복이 심한 나를 끝까지 이해해주고 품어준 사람들.
정말 힘들었고 그럼에도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웃을 수 있었고 쉴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내 마음을 아끼지 않고 늘 표현하고 말해주리라 다짐한다.
그래도 내년이 기대가 되는 건, 팬데믹이 끝이 날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2021년에는 모두가 웃을 수 있고 올해 못한 모든 일들을 다 해내는,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오늘 저녁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부대찌개와 소주를 서로 기울이며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토닥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