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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May 08. 2024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노력한 만큼 넘어간다

그 이후 나는 이 친구와 꼭!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이 친구를 '정호'라고 불러야겠다.


정호랑 친해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편지도 쓰고, 선물도 주고, 자주 찾아도 가고...

말도 별로 없고 외향적이지 않은 친구라서 별다른 반응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정호 교실 앞자리에 가서 정호한테 말도 걸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언젠가는 마음을 열어주겠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정호는 나를 똑같이 대했다.

정호한테 지금까지 보여주던 모습 외에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정호가 정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특징을 다 따라 해보기로 했다.

관심도 없었던 첼로를 시작하고, 싫다고 그만뒀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반이 성적순으로 나뉘던 곳이라서 그 사람과 같은 레벨이 되기 위해서 밤마다 공부했다.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영어를 잘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싫어했던 내가 행사 엠씨나 반주자도 열심히 준비해 맡게됐다.


살면서 제일 노력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아마 이때일 거다.

덕분에 학창시철을 열심히 보내서 후회는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계속 굴하지 않고 정호랑 친해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루는 10분이라는 짧은 틈에도 매번 찾아오는 나를 반기지도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 정호에게 너무 서운함을 느꼈다.



"나는 너를 이 짧은 10분 동안에도 보러 오려고 애쓰는데, 왜 너는 올 생각조차 안 해?"

내가 원해서 그랬던 거면서, 정호에게 소리 지르면서 괜히 화풀이했다.


정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너가 매번 오는 걸 아니까 내가 가면 엇갈릴까 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정호라는 사람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군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도 정호가 마음을 연 것 같아 정호와 함께하는 학교생활이 너무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슬픈 티를 내지 않았지만, 항상 정호 앞에만 가면 눈물이 났다.

정호는 남몰래 우는 내 손을 잡아주고, 내가 슬퍼할 때마다 옆에서 묵묵히 위로해 줬다.

연말 댄스파티 파트너까지 하게 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얼마 뒤, 정호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정호가 한국으로 간 뒤에 나는 매일 울면서 정호와 나 사이에 비워진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기를 썼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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