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지나 홀로 잘 존재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사랑은 우리가 가진 결핍 사이사이에 존재했다.
결핍을 메우고, 마음 한구석의 알 수 없는 구멍을 채워주는 게 사랑이었다.
어떤 날엔 네가 느끼는 슬픔을 알고 싶어 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럴 때면 왜 사람은 하나의 영혼밖에 가질 수 없는 것인지 원망스러웠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잃어갔다.
나의 결핍을 드러내고, 너의 불안을 공유하고, 치부를 들키고,
서로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그런 것들로 연결된 우리 사이의 공기 밀도는 점점 더 짙어졌다.
두 개의 삶이 하나의 삶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를 독점하길 즐겼고 지나간 계절에는 함께 슬퍼했다.
"아무리 강렬한 사랑의 설렘도 처음처럼 유지될 수는 없었다.
영화 속 중년 여인이 “모든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이 돼”라고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관계도 결국 낡아진다.
인간이 성장기를 거쳐 노화의 단계를 지나는 것처럼
모든 관계 또한 시간에 따라 모양새가 변하고,
거리가 느슨해지고, 얼룩이 생긴다.
그렇게 낡은 관계는 때로는 근사한 빈티지가 되지만, 자연스레 소멸하기도 한다.
끝이 뻔히 보이는 관계에 위태롭게 발붙이고 있었던 것은,
미처 소진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마음 때문이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끝내기 위해서는 헤어지는 방법밖에는 없다.
헤어짐이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역시 다툼이 두려워 불만을 삭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던 관계에서는
아쉽게도 서로를 맞춰볼 기회가 없었다.
참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불만을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결국 다툼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두 세계가 융화되기 위해 우리는 더 솔직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두려워 말고 다퉈야 한다.
홀로 잘 존재할수록, 나를 살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더라도
내 생활의 균형을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품어본다.
언제 어디서 사랑이라는 우연이 나를 덮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안정감을 온전히 즐기며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