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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Oct 14. 2024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말

< 키워드/ 숙제>  


이번 키워드는 '숙제'입니다.

키워드: 숙제/ 장르: 짧은 소설




드디어, 이혼했다.   

  

“밥 먹고 갈래?”     


미연은 남편을 바라봤다.

미안한 마음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원하는 대로 이혼을 해주었는데, 남편도 썩

편해 보이지 만은 않았다.    

 

“됐어. 그냥 갈게.”

“미연아... 잘 지내”

“한 가지만 부탁할게. 당분간만 엄마 전화받아줘. 곧 말할 거야.”

“응”     


미연이 멀어지는 걸 남편은 한동안 지켜봤다. 그런 남자였다. 그러니, 이혼을 안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하니, 그건 백 퍼센트 진심일 테니까.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아닐 테니까. 또한 남편은 그 감정을 책임지려 할 테니까.     

이제는 혼자 살아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분명, 남편에게 전화를 걸 엄마였다. 미연은 하는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얘, 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니?”

“바빴어요”

“다른 집 딸들은 전화도 잘하던데 우리 집 딸은 참...”

이번에 네 형부 생일이잖니. 주말에 모처럼 집에서 밥을 해줄까 해서.

외식하자는데, 외식이 뭐 먹은 거 같니?”

“그런데?”

“그런데는. 하나뿐인 처제가 와야지. 박서방이랑 같이 시간 맞춰 와라”

“바빠요.”

“바빠도 밥은 먹겠지. 다 마음의 문제지, 꼭 오너라. 형부 선물도 좀 챙기고. 쓸데없는 자잘한 거 사지 말고

하나를 사도 티 나는 걸 사야 해”     


엄마가 무슨 말인가를 더하려 했는데, 미연은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 었다. 다른 자식들과 비교하거나, 못마땅해하는 내용의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미연이 이혼한 거라도 알게 된다면, 엄마의 반응은 뻔했다.     


“뭐? 남들 보기 창피하게”     


아마도, 이 말이 먼저 나올 것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니?”


그다음 말은 이거겠지.

무슨 이유였는지, 그래서 너는 지금 괜찮은지, 그런 걸 먼저 물어볼 엄마는 아니었다.

아빠의 친목회 모임이 집에서 있던 날, 엄마는 미연에게 돈을 주며 친구나 만나러 나가라고

했었다. 손님들이 오기전 빨리 나가라며 재촉했었다. 그리고 언니에겐 집에서 엄마를 도와달라 했었다.

좋은 대학을 다니던 언니는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미연은 이 기분으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남편의 짐을 모두 정리한 지 한 달 정도 되어가지만, 곳곳에 남편과의 추억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잊어버린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충돌하고 있었다.

마침, 유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아?”     


유진의 괜찮냐는 첫 말에, 미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에게도 이런 존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하마터면 미연은 울 뻔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꾹 참았다. 미연은 남들앞에서 우는 게 너무 어색했다. 그러다보니 눈물을

참는게 습관이 되었다.    


“저녁 먹자. 나 오늘 한가해”     


유진은 애써 시간을 내려했다. 이런 날 혼자 있을 미연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다음에 먹자. 나, 집에 가서 혼맥 하며 넷플릭스나 보려고”

“괜찮겠어?”

“그럼. 싱글 라이프를 즐겨야지. 오늘부터 1일이야. 싱글 1일”


미연은 과하게 밝게 말했다. 조금 오버스럽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


“그래, 혹시라도 수다 떨고 싶음 꼭 연락해. 힘들거나 아프거나 할 때도 꼭, 혼자 참지 말고”

“응 고마워”     


유진의 아이는 이제 20개월이었다. 그런 유진이 저녁에 나오려면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저녁도 준비해야 하며, 할 일이 많을 걸 미연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혼자 걷는 거리도 오늘따라 유독 쓸쓸하게

느껴졌다. 유진에게 말했던 대로 집으로 돌아가 혼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겪었던 감정의 파도도 어느 사이 잠잠해져 있었다.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나의 실패를, 남편의 마음이 변했음을, 우리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다.

인정하고 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싶어 허탈했다.

다만, 이제 정말 혼자였다. 하지만 ‘이혼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터였다.     


금요일 저녁에도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꼭 오라는 말이었다.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 말을 들어본 건 기억에 나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할 말을 할 뿐이었다.

미연은 미리 사둔 형부의 넥타이와 엄마에게 드릴 영양제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분위기를 봐서 이혼 얘기도 할 참이었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은 출근하는 길보다 더

힘들었다.

누군가에겐 친정이 그리움과도 같은 곳이라던데, 쉼터 같은 곳이라던데, 미연에겐 아니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체기가 느껴지는 듯 명치가 답답했다.   

  

“박서방은?”

“출장 갔어”

“박서방 요즘 많이 바쁘니?”

“조금”

“그래, 부지런히 일해서 승진도 하고 해야지.

넌 일하는 사람 마음 편하게 집안 깨끗이 하고, 잘해 먹이고”     


나물을 버무리던 엄마가 미연의 얼굴을 쳐다봤다.     


“넌, 관리 안 하니?”     


엄마가 이 말 뒤에 어떤 말을 할지 예상이 되었다.     


“젊은 애가 얼굴이 푸석푸석해서는, 집 안에서 여자가 그러고 있어봐라. 다른 마음이

안생기나”  

   

그러면서 엄마는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고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가 바람피우는 게 여자 탓이라는거야?"


미연은 명치끝이 콕콕 쑤셔왔다.

이때, 현관 벨이 울렸다.   

   

“아이고 왔나 보다”     


엄마는 얼른 손에서 비닐장갑을 벗고, 빠른 동작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언니 혼자였다.     


“이 서방은?”     


엄마는 언니보다 형부를 더 기다린 눈치였다.     


“조금 늦는다고 해서 나 먼저 왔어요.”

“그래, 바쁘지 바빠. 큰일 하는 사람인데”     


엄마는 언니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미연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누군 친정 갈 땐 편하게 하고 간다는데, 난 오히려 친정올 땐 차려입어.

그래야 엄마가 좋아하시니까’     


예전에,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트위드 원피스에 명품백을 든 언니는 불편해 보였다.      


“아이고, 이서방이네?”     


형부는 한 시간이 지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귀한 손님을 접대해야 돼서 올 수가 없다고, 죄송하니 장모님 통장에

백만 원을 넣어드렸다고 했다. 장모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너무 아쉽다고

했단다.     


“아휴, 백만 원이나”     


전화를 끊고 난 엄마는 더 바빠졌다.

언니에게 줄 음식을 그릇에 담고, 밑반찬을 더 만드느라 분주했다.     


“엄마,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까. 이 서방 집에서 밥도 잘 안먹어요.”

“아휴, 그래도 아침은 먹겠지. 돈도 받았는데, 가만있으면 되나”     


엄마의 모습에 언니는 옅은 한숨을 토해냈다.

예전엔 언니만 편애하는 엄마도, 늘 완벽한 언니도 버거웠다.

하지만, 어쩌면 언니도 중간에서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맞춰주는 쪽은 더 지치게 마련이니까.     


한 참후에야 엄마가 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엄마와 딸들이 한 자리에 앉았지만 분위기는 늘 그렇듯 어색하고 차가웠다.

분위기를 올리던 언니마저 오늘은 지쳐보였다. 생각이 가득해보였다.     


“넌 애 안 갖니? 나이는 먹어가는 게”


침묵을 깨고 여지없이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계획성이 없어. 욕심도 없고, 그러니 그 모양이지.”

“엄마”     


언니가 엄마의 말을 제지했다.


“내가 뭐가 어떤데?”     


엄마 말이야 늘 그래서 흘려들었는데, 오늘은 참기 힘들었다.

아니, 흘려들었다는 것도 어쩌면 거짓말이고 착각이었다.

괜찮은 척하며 피했을 뿐이었다.     


“내가 뭐가 어때서 늘 그렇게 말씀하시냐고요.”

“얘가 또 뭘 그렇게 반색을 해? 엄마 말을 잘 들었어봐.

지금 보다야 훨씬 낫지.”

“엄마, 내가 엄마 인생 가지고, 왜 그렇게 살았냐고, 비난하지 않잖아요.

다른 엄마랑 비교하며, 왜 엄마는 다른 엄마처럼 해주지 않냐고 비교하지 않잖아요.

그건 존중이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게 설상 부모자식 간이라도

존중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엄마는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비교하고, 왜 그러는 건데요?”


이번엔 언니도 말리지 않았다. 흥분한 건 엄마였다     


“어머어머, 얘 말하는 것좀 봐라. 세상에. 내가 뭘 어쨌다고, 다 지들 위해서

그러는 건데.”     


엄마는 언니의 동조를 바라는 듯 언니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미연이 말 틀린 거 없어요.”     


언니가 거들었다.

언니의 말에, 엄마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미연이 말할 때와는 달리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뭐?”

“엄마, 늘 비교하고, 비난하고, 기대하는 거 지쳐요.

엄마의 기대대로만 살 순 없잖아요. 나도 사실...”     


언니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을 숙이는

언니의 기질이 또 한 번 언니를 말리는 듯했다. 참으라고. 더 이상은 아니라고.     


“됐다. 다 필요 없다”     


언니의 한 마디가 엄마에겐 데미지가 컸을 것이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 우리가 가기 전까지 나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우리가 가려고 하자 나와서는 챙겨두었던 음식들을 잔뜩 내주었다. 그 가운데 미연의 것은

아주 적었다.


“언니, 나 사실 이혼했어”


언니의 차 안에서 미연은 이혼사실을 말했다.

언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진작 말 좀 하지 그랬어. 늘 그렇게 통보식이니 넌...”


언니는 코너에 차를 세웠다. 차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무슨 이유였는지 물어봐도 되니?”


언니가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데.”

“그래서, 이혼해 달라고 해?”

“응. 미안하데”

“나쁜 새끼. 바람 펴놓고 미안하면 다야? 그렇게 안 봤는데 쓰레기네”


언니가 그렇게 욕을 해주니 속이 좀 후련했다. 언니는 평소에 욕도 잘 안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미연은 언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니 말이다.     


“넌, 괜찮아? 힘들었겠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실패하고 싶지 않았어. 엄마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어. 근데, 그것마저 내 뜻대로

안되네. 알잖아. 나 늘 언니랑 다른 자식들이랑 비교당한 거.

늘 엄마 성에 안 차는 자식이었던 거. 그래서 더 잘 살고 싶었는데.”

“솔직히, 네가 부럽다.”     


언니의 말은 좀 의외였다.     


“내가 부럽다고?”

“응”

“뭐가 부러워? 지금 이혼한 마당에”

“나, 네 형부랑 사이 별로야. 그 인간, 오늘도 누굴 만나는 건지 모르지.

근데, 난 이혼 못할 거 같아.”

“왜?”

“난, 엄마를 좀 닮았는지도 몰라. 아니면 세뇌당한 걸까?

네 형부랑 애정은 없지만, 지금 이 생활이 또 나쁘지 않은 거 같으니 말이야.

나, 되게 속물이야.”  

   

언니가 변한 걸까? 아니면 미연이 그동안 언니를 너무 몰랐던 걸까?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것이다.

언니라는 이미지를 고정시키고,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왔던 것일까.

미연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자신이 속물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언니가 되려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므로.     


“엄마에겐 언제 말할 건데?”

“사실, 오늘 말하려 했는데, 오늘은 아닌 거 같아서”

“언젠가 부딪혀야 할 일이야. 담백하게 말해.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고.

네 말대로 네 인생이야. 엄마야 아쉽고, 안타깝겠지.”

“응”


언니도 엄마랑 같은 부류라 생각하면서 거리를 두어왔었는데, 미연은 오늘 언니와

대화하며, 언니도 엄마의 딸로 부응하며 사느라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넌, 후회 없이 살아.”

“뭐야. 언니는 인생 다 끝난 사람처럼”

“난 좀 후회해도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 거 같아.

그게 나라는 걸 이제 좀 알겠어”     


언니가 다시 시동을 켰다.


“가끔, 전화해. 고기 당길 때. 네 형부 맨날 늦어서 나도 혼자 저녁 먹을 때 많다.

고기는 혼자 먹기 그렇잖아?”


언니가 피식 웃었다.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언니 말대로 엄마와도 담백해질 수 있을까?

그건, 아직도 미연에게 남겨진 숙제일지도 몰랐다.

숙제를 안고 사는 건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사는 것처럼 마음이 늘 찜찜하기 마련이었다.

꿈에도 나와서 괴롭힐만큼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풀지 않는 숙제였다.

미연도 이제 다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 숙제를 풀어야 했다.


그날 밤, 미연은 내내 그런 생각들이 차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미연이 말했던 내로, 내 인생이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런 내 인생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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