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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사자 Aug 25. 2023

새로운 짝꿍이 결정된 날

많은 짝꿍들 중에 그 아이가 유독 기억이 난다

학교에 다닐 때, 교실에서 사용한 책상은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분리되지 않는 책상이었다. 하나의 책상에 서랍은 각각 있고, 의자를 두 개 놓아 두명이 짝이 되는 것이다. 매 학년마다 담임 선생님들은 짝꿍을 정기적으로 바꾸었는데, 선생님들마다 짝을 바꾸는 방식이 다양했다. 가장 무난하면서 쉬운 것은 번호순서대로 앉히는 것이다. 종종 눈이 나쁘거나 한 친구들은 앞 자리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럼 번호가 하나씩 밀리게 된다. 모두가 순순히 자기 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가장 반발이 심했던 것은 원하지 않는 짝이 결정될 때인데, 몇 학년 때인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한 번은 여학생들이 앉아 있고, 남학생들이 앉고 싶은 자리에 가서 앉는 것으로 짝꿍을 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남학생들이 얼마나 숫기가 없었는지 아무도 선뜻 먼저 자리를 정하고 앉는 아이가 없었다. 대충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리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을 때에 나도 용기를 내서 어느 자리에 앉았는데 내 새로운 짝꿍에게 들은 말이 충격이었다. 


" 야, 너 왜 여기 앉아! 빨리 일어나! "


그럼에도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한번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또 다른 자리를 찾는 게 더 싫었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이는 속으로 다른 사람이 오길 기다렸을 수도 있는데, 내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짝꿍이 되었다. 이 아이는 이름이 네 글자였는데, 기억나는 것은 진짜 수업시간에 필기를 완벽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유독 기억하는 짝꿍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이었다. 얼굴은 하얗고 피부가 진짜 우유빛깔이 나는 그 친구는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나와 같았다. 그리고 반장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새로 짝꿍을 정하겠다고 하시고는 쪽지를 하나씩 나눠주셨다. 그 쪽지에 자기 이름을 쓰고, 짝꿍이 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같이 적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든 쪽지는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서로 매칭이 되면 같이 앉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서로의 이름을 적은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남은 아이들이 누구와 짝꿍이 되느냐 하는 것인데, 그 날 짝꿍이 결정된었던 순간의 기억이 생생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친구와 같이 벌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떤 장난을 치다가 혼나던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가 적은 친구는 다른 사람을 적었다. 정작 나와 짝이 된 친구가 내 이름을 적었던 건데, 이렇게 매칭이 안되고 얽히게 되면 선택받은 사람에게 누구와 짝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게 된다. 나는 나를 적었던 그 친구와 짝꿍이 되겠다고 이야기하고 우리는 짝꿍이 되었다. 벌 받고 있는 순간에 물어보셨기 때문에 나는 벌서면서 대답했던 것이 기억이 나는 것이다. 


내 짝꿍은 두꺼운 안경을 꼈고, 핑크 팬더 그림을 참 잘그렸다. 내게도 그림을 그려서 자주 보여주곤 했었다. 누군가에게 선택되었던 첫번째 기억인 것 같아서 더 인상깊었던 것 같다. 벌을 서는 와중에도 반 친구들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그 아이와 짝꿍이 되겠다고 말했는데, 반 친구들이 박수를 쳐줬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듯 한데 조금 쑥쓰러운 기억이다. 








사진: Unsplashamol so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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