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사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명사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 국어사전
그런데 현실의 소통은 사전처럼 단정하게 내려앉지 않는다.
때로는 나와 상대방의 말이 같아도 마음이 어긋나고,
생각이 달라도 소통이 이상하게 맞아떨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떠올려본다.
“소통을 등산에 비유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1) 같은 산을 같은 길로 오르는 것
2) 오르는 길은 달라도 목표 지점이 같은 것
3) 오르는 길과 목표 지점이 달라도 같은 산에 있는 것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이 질문을 다시 읽어보며, 나는 막연히 ‘소통이 잘된다’는 말을 떠올렸다.
국어사전처럼 “뜻이 잘 통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등산이라는 비유를 붙여놓고 보니 2번과 3번 사이에서 망설여졌다.
정답이 있을까? 다름을 인정하라는 뜻일까?
혹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라는 뜻일까?
머릿속에 각각의 장면을 그려보며 천천히 생각해 본다.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한 발 한 발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
이보다 편안한 소통이 또 있을까?
다만, 생각과 방법이 이토록 완벽히 일치하는 순간은 사실 많지 않다.
어쩌면 너무 이상적이어서 때로는 서로의 견해의 차이를 숨기고
동일함을 강요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2) 오르는 길은 달라도 목표 지점이 같은 것
걷는 길은 달라도 “우리가 원하는 곳”이 같다는 것.
이 구조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건강한 협업 관계에 가깝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다만 목표가 흐려지면 각자의 길은 방황이 되고 서로의 속도를 놓치기 쉽다.
생각이 다르고 가고 싶은 곳도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산 위, 같은 맥락 속에 존재하며
서로의 걸음을 존중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관계는 빠르게 나아가진 못한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아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본질적인 이상형은
“너는 그 길, 나는 이 길… 그래도 우리는 같은 산에 있다.”라는 태도 아닐까.
소통은 서로를 같아지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다름 속에서 함께 존재하려 애쓰는 일이다.
같은 길을 걷지 않아도, 심지어 목적지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산 위에 있다”는 동질감.
그 마음 하나가 우리를 이어준다.
그래서 나는 소통의 정답을 굳이 고르라면 세 번째를 택하겠다.
모든 방향과 속도를 억지로 맞추기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존재하는 것.
결국, 소통의 핵심은 합의가 아니라 공존이고, 이해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정상으로,
누군가는 능선을 따라,
또 누군가는 숲길을 걷는다.
각자의 길에서 서로의 존재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당신에게 소통은 어떤 길로 느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