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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물꼬기 Dec 10. 2023

명품백 사주기로 했는데 CRS 너마저

물고기를 키우다 보면 자꾸 다른 물고기에게 눈이 간다.  그중에 유독 나를 유혹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CRS였다.


CRS는 Cristal Red Shrimp의 약자로, 애완용 새우의 한 종류로 매우 아름다운 친구였다. 크기는 겨우 1 ~ 1.5Cm 되었는데,  등급과 패턴에 따라 한 마리에 1만 원에서 100만 원이 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격을 듣고 이게 정말일까? 100만 원이 넘어가는 애완용 새우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애완용 새우 최대 카페(새 사사)에 가입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정말로 고가의 새우들이 거래가 되고 있었다.  놀라웠다. 신세계였다. 

발색 좋고 체형과 패턴이 이쁜 개체를 계속 키우면서 '형질' 을 유지시키는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을 '전문 브리더' 라고 칭했다.  

명가혈 R100? 한 쌍에 100만 원?


다양한 개체 중에 나는 유독 명가혈 R100이라는 개체가 눈에 들어왔다.  몸 전체가 백옥처럼 하얗고 광이 나며 갑이 두꺼웠다. 당시, R100 최고 등급 부모 개체는 한 쌍에 100만 원이 넘었다. 

나는 와이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CRS 잘 만 키우면 돈도 벌 수 있데,   한번 키워볼까? 잘 키워서 명품백 사줄게.' 

'정말 ? 가능해? 명품백 정말로 사주는 거다 약속해'

'그럼, 내가 좀 잘 키우니까 걱정 마, 꼭 사줄게'

나는 이렇게 호언장담으로 했고 나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사명감에 불타오르다


'명품백' 을 사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퇴근 후 CRS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우 카페 글을 모조리 다 읽고,  키우는 방법, 어항 세팅 방법 등등을 프린트해서 정독했다. 이렇게 1개월을 공부한 후 드디어 첫 애완용 새우를 입양을 했다.  처음엔 입문용 명가혈 래드비를 입양했고, 추후에 R100 F1(후대) 10 마리를 정말 어렵게 구했다.(가격은 비밀)


숲속 정원 같은 CRS 어항 


작은 어항(30cube) 2개로 시작했다. 오른쪽은 입문용 어항, 왼쪽은 R100 F1 후대용 이었다. 작고 움직임이 적은 애완용 새우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마치 작은 숲속 정원 한가운데 고요히 서서,  꽃과 나비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커다란 여과 장치도 필요 없었다.  작은 스펀지 여과기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게 있었다. 그건,  PH , 온도 그리고 먹이였다. PH, 온도, 먹이 생육조건을 사수해야 했다.  워낙 약한 개체라 조금이라도 환경이 좋지 못하면 죽는다고 했다. 두려웠다. 죽으면 명품백은 사라진다...

PH는 수소이온농도를 나타낸다.  CRS는 약산성(6.6 ~ 6.9)을 유지해야 했다. 특히, 일정하게 PH의 변화 폭을 최소화(0.5 이하) 하며 유지하는 게 포인트였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새우 전용 소일을 사용했고, 연갈탄, 박테리아제 사용, 원수(물) 관리, 증발된 량 자동 보충 수조 운영 등등등 세밀하게 관리했다.  그렇게 겨울을 지나 봄으로 6개월이 흘렀다.


드디어 CRS 아가들이 태어나다


6개월 후  처음으로 CRS 아기들이 태어났다. 정말 So tiny였다.  너무도 작은 아이들인데도, 빨간 줄무늬, 체형, 다리 색깔 등이 뚜렷하게 보였다. 매일 퇴근만 기다려졌다. 아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했다. 뽕잎이 발색과 건강을 유지한다고 해서 시골집에서 뽕잎도 공수해서 줬다. 



그렇게 잘 컸다. 점점 아이들이 불어나더니 입문용 래드비가 100마리가 넘어갔다.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 이대로만 유지한다면 '명품백'을 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CRS는 온도 편차에 민감했고 뜨거운 여름을 견디지 못했다. 최대한 25도 이하 온도를 유지했지만,  한 마리 두 마리 용궁으로 떠나갔다...

왜 죽는 걸까? 허망했다. 방법이 없었다. 정확한 죽음의 원인도 찾지 못했다. 결국 소중했던 CRS는 용궁으로 모두 사라졌다. 와이프는 지금도 '명품백' 언제 사줄꺼냐고 성화다. (사준다 내가 으으으)

난 어항을 보고 있으면 가끔 푸른 모스 위에서 작은 발을 움직이며 귀여운 표정을 짓던 CRS가 떠오른다. 용궁에 잘 갔으려나 ~ 다음에 꼭 다시 키워보리라. 다시 키운다면 투박한 패턴이지만 튼튼한 CRS를 키워보리라. 더 이상 용궁으로 보내기 싫다. 함께 오래오래 살고 싶다.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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