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수업 3번째 숙제
형용사? 이번 미션은 나를 표현하는 ‘형용사’를 찾아라!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숙제. 나는 이제 거의 포기 상태다. 무념무상, 반사적으로 ‘형용사’라는 놈의 정체부터 분석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갔다. 아래는 네이버 사전에 나온 형용사의 의미다.
형용사(Adjective)는 한국어에서 명사나 대명사의 속성이나 특징을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수정하는 역할을 하며 주로 어떤 것의 성질, 상태, 크기, 양, 정도 등을 나타낸다.
나는 형용사와 동사의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졸리다’는 동사 같기도 하다. 졸리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니 동사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졸다’가 '동사'였고, ‘졸리다’는 졸음이 오는 상태의 '형용사'였다.
그럼 그렇지, 나는 글을 쓸 때 사전을 옆에 두고 찾아봐야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자, 이제 형용사 관련 대가들의 에세이 문장을 읽어보자. 첫 번째로, 김이나 작가님의 『보통의 언어들』 중에 ‘찬란하다’라는 형용사이다.
‘찬란하다’는 표현은 내겐 유리 조각들이 부딪혀 챙그렁대는 소리가 나는, 공감각적인 그것에 가깝다. 뜨겁게 빛나는 태양보다는, 그 빛이 내리쬐어 물결에 빛나는 모습이 ‘찬란하다’와 어울리는 것 같다. 아이폰 유저에게 국한된 비유겠지만, ‘반짝이다’가 일반 사진이라면 ‘찬란하다’는 1초 정도의 움직임까지 담아내는 라이브 포토로 포착될 수 있는 느낌이다.
‘찬란하다’는 형용사로 사전적 의미는 빛이 번쩍거리며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또는 그 빛이 매우 밝고 강렬하다는 뜻이다. 아이폰의 라이브 포토의 예시는 나도 아이폰 사용자이기에 딱 공감이 갔다.
공감적인 느낌의 형용사라. 참 맘에 들었다. 나도 찬란한 인간이 되고 싶다. 찬란한 물고기, 찬란한 식물 책 제목으로 매우 찬란하지 않은가?
두 번째로, 나태주 시인님의 『봄이다, 살아보자』 중에서 ‘좋아요 어법’에 관한 문장이다.
정말로 그건 그렇다. 상황이나 삶이 긍정적이고 좋아서 좋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좋다’는 말,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고 자주 들어서 상황이나 삶이 좋은 것이 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세상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좋아요 어법’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디 우리,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나태주 시인의 시와 글은 참 쉽게 읽힌다. 어떻게 이런 조화로운 글을 쓰실까 생각해 보면, 분명히 나태주 시인의 삶 자체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창'이니까. 나태주 시인의 ‘좋다’라는 시를 만나보자.
제목: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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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딱 두 줄이지만 강렬하다. 확 다가온다. 그냥 좋다. 모든 걸 다 덜어내어 엑기스만 남은 '새벽이슬' 같다.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지만 내 안에는 말 많은 박찬호(?)가 산다. 나는 풍채도 과묵한데 왜 글만 쓰면 주저리주저리 할 말이 많을까? 도무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이병률 시인의 『함께』라는 작품을 만나보자.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저히 둘은 말하지 않았다. 정말, 비참할 정도로, 징그러울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두 남자의 여행 방식은 그런 거였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그 모든 게 똑같다는 사실에 문득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 왔다. 뭔가 빠진 듯 허전하고 익숙하지 않던 여행에서 가슴속의 독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측은하지만 대견하고, 쓸쓸하지만 듬직한 뒷모습. 나도 저런 뒷모습을 가졌을까. 저건 내 모습이기도 한 걸까.
형용사가 많이 등장한다. 비참한, 징그러운, 허전한, 익숙한, 측은한, 쓸쓸한, 듬직한 등등. 문장에 쓰인 형용사의 형태와 느낌을 보면 그 사람의 문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떤 형용사로 나를 존재하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형용사일까? 어쩌면, 나의 형용사는 어색하고 서툴다. 그래도 누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 편에 나의 형용사를 공개합니다.)